[시론]함성득/‘체감 인사편중’이 문제다

  • 입력 2001년 3월 21일 18시 31분


국민화합을 기초로 새롭게 국가 경쟁력을 제고해야 할 시점에서 이를 저해하는 우리 정치의 가장 고질적인 폐해는 영호남간의 갈등으로 대표되는 지역주의다. 지금까지 이런 지역주의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통령의 편중된 인사정책이었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잘못된 인사정책을 바로잡아 지역주의를 해결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실패했다. 오히려 그들은 편중된 인사정책으로 지역 갈등을 더욱 심화시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는 데 악용했다.

▼고위요직 호남출신 크게 늘어▼

사실 적지 않은 실력 있는 호남 출신 인사들이 역대 비호남 정권의 편견으로 인해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좌절한 호남 출신들의 지지로 선출된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왜곡된 인사정책을 바로잡아 지역주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고생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됐을 때는 더 엄한 시어머니가 되는 경우처럼 현 정부에서도 가장 실패한 정책 중의 하나가 인사정책이다. 실제로 국민이 느끼는 ‘체감 인사편중’이 심화돼 현재 영호남간의 지역주의는 더욱 악화됐다.

이런 지역주의의 악화는 희생이 따르는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시점에서 국민화합을 저해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중앙인사위원회가 공직 사회의 인사편중 시비에 대해 실상을 밝히고 앞으로의 인사정책 발전 방향을 발표했다. 이는 역대 정권들이 실패한 공직사회의 병폐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 앞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하겠다고 한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이번 발표는 현 정부가 그 동안 어느 정도 편중된 인사정책을 시행해 왔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발표 내용은 우리가 느끼는 인사 편중 정도와는 달리 현 정부에서의 인사패턴은 전체 인구에서 각 지역이 차지하는 인구 분포 비율에 근접한 추세였으며 편중성 또한 역대 정권 중 가장 낮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국민이 느끼는 지연이나 학연 등에 의한 ‘체감 인사편중’은 오히려 역대 정권에 비해 현 정부 아래서 더욱 심화됐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언론과 국민의 눈에 쉽게 드러나는 정부 고위 요직에 호남 출신 인사를 임명하는 현상이 짧은 기간에 급격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둘째, 국민과 직접 대면하는 공기업을 비롯한 정부 산하단체에 호남 출신 인사들이 많이 임명됐기 때문이다. 셋째, 과거 정권의 편중된 인사정책 때문에 호남 출신 인사들은 경력을 제대로 관리하고 실력을 쌓을 기회를 갖지 못해 인재풀이 빈약한 상황에서 사람을 찾다 보니 경력 면에서 많이 뒤지는 호남 출신 인사를 발탁해 그 왜곡성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로 국민이 느끼는 체감 인사편중 현상은 실제 통계상의 수치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한편 정부가 발표한 공직인사 쇄신책을 보면 다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실적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출신지역’을 더욱 고려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출신지역 안배에 치중하다 보면 필요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나아가 출신지역별로 공직인사를 틀에 맞춰 배분하다 보면 공직사회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필요한 인재 적재적소 등용을▼

결국 이번 인사 쇄신책은 단순히 통계상의 지역적 균형을 위해 정부가 급하게 내놓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출신지역 구분 없이 필요한 인재를 얼마나 적재적소에 등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공무원에게는 ‘승진’과 ‘보직’이 제일 중요한 관심사다. 결국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공정한 승진과 보직을 기초로 공무원의 사기 진작을 통해 그들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공평한 인사정책은 성공한 대통령 리더십의 핵심적 요소다. 이번 중앙인사위원회의 인사 편중 시정을 위한 쇄신책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제 ‘지역편중 인사’라는 말이 사라지고 모든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더 좋은 정부’를 만드는 공직 사회를 기대해 본다.

함성득(고려대 교수·대통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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