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건강보험 재정 파탄은 장관 한 사람의 경질로 끝낼 일이 아니라고 본다. 퇴임 최 장관이 잘못을 인정하며 말했듯이 의료보험은 수십년간 ‘저수가 저급여 저부담’이라는 ‘허구’의 구조였다. 지역 공무원 직장으로 갈려졌던 이런 허구의 구조들이 복지차원에서 하나로 무리하게 통합됨으로써 재정이 취약해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될 수 있었다. 거기에다 의약분업을 준비 없이 강행했으니 재정이 무너진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신임 김원길(金元吉) 장관은 “일단 부도위기는 막아야 하기 때문에 우선 재정에서 지원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신임 장관도 우선은 땜질처방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보험 재정은 급한 불 막기식으로 운영됐다. 재정 안정 대책이 없었다는 말이다.
어쨌든 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을 진두지휘한 차흥봉(車興奉) 최선정 전장관은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은 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을 해도 국민의 추가부담은 없으리라고 잘못 판단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임질 사람이 두 사람뿐인가. 모든 화살이 복지부로 쏠리는 형국이다. 국무총리도 속았다고 하고 대통령도 속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책정당이라는 여당과 청와대 비서진은 대통령이 속을 때까지 뭐하고 있었는가.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감당키 어려운 정책을 무모하게 밀어붙인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가.
그런데도 정책결정과정의 책임소재 규명과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듯한 분위기가 정부 안팎에서 일고 있다. 의료수가 인상을 주장한 의료계 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분업 시행 전 연간 4조2000억원의 추가재정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선보완 후시행을 주장했다고 맞서고 있다.
의료정책 실정은 정부의 총체적 정책 기능 마비의 결과이다. 이러한 잘못된 정책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따지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정부는 의보 실정 백서를 발간해 두고두고 ‘실패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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