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란 데사이 장편소설
312쪽 8000원 이레
인도의 한 시골마을. 주인공 삼파드는 우체국에서 사람들 편지를 뜯어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청년이다.
어느날 삼파드는 은행원인 아버지 상관의 딸 결혼식에서 스트립쇼를 연출하는 사고를 저지른다. 과수원 나무 위로 도망친 그는 몰려든 이웃에게 몰래 훔쳐본 편지 내용을 발설한다. 영문도 모르고 속내를 들킨 마을사람들은 급기야 그를 ‘나무 위의 성자’로 추앙하기에 이른다.
알쏭달쏭한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한바탕 법석이 벌어진다. 수완 좋은 아버지는 후원금을 모집하고 기증품을 받아 광고 협찬을 하는 등 돈을 벌어 희희낙낙.
하지만 얼마 못가서 뜻밖의 문제가 터진다. 삼파드 주변에 몰려든 원숭이들이 술을 훔쳐먹고 난동을 부린 것. 군사령관, 보건소 원장, 지방 장관, 교수까지 동원된 ‘원숭이 체포조’가 과수원에 들이닥치자 삼파드는 사라지고 없다.
위트와 해학, 블랙유머가 가득한 이 소설은 유쾌하면서도 슬프고, 슬프지만 아름답다. 개성 강한 인물들이 뒤엉킨 왁자지껄한 소동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경쾌한 일침을 날린다.
그것은 유사종교에 대한 비웃음이고, 부패한 관리들에 대한 조롱이며, 우스운 여성 차별에 대한 폭로이자, 출세 지상주의가 가진 해악에 대한 고발이다.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한 키란 데사이(29)는 이 작품에서 20대 중반 데뷔작이라 믿기 힘들만큼 원숙한 글솜씨를 보여 미국 문단과 매스컴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삼파드가 아들을 이용해 돈을 벌 궁리에만 여념이 없는 아버지를 향해 던진 따끔한 충고에서도 조숙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어떤 도공은 진흙 덩어리로 항아리를 만들죠. 어떤 화가는 낙타 오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어떤 거지는 빈손을 내밀어 먹을 걸 얻어내구요. 무얼 더 갈망하지 말고 현재 갖고 있는 걸로 때우라는 얘깁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을 지라도.”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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