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서울하늘 숨막힌다]사람잡는 대기오염

  • 입력 2001년 3월 25일 18시 34분


▼죽음의 스모그 수명 2년이상 단축 ▼

《‘푸르고 높은 하늘’이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국내에 입국하며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숨이 막힌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10년 새 서울 하늘은 완전히 변했다.서울의 공기가 변한 것이다. 특히 요즘은 연일 계속되는 황사까지 겹쳐 가까이 있는 건물을 제외하고는 온통 잿빛이다. 출근할 때는 마치 우리가 ‘죽은 도시’로 걸어 들어가는 것만 같다.그런데도 정부당국은 서울의 대기가 아직 ‘환경기준치’를 넘지 않았다며 느긋하다.

동식물의 생태계가 서서히 붕괴되며 인간 역시 영문도 모른 채 이 악화된 대기 속에서 매일매일 건강에 치명상을 입고 있는데도 그렇다. ‘적색 경보’가 켜진 서울의 대기를 집중 해부한다.》

두 돌 때부터 천식을 앓아온 아들(7)을 둔 유모씨(35·여·서울 서초동)에게 황사(黃砂)는 그저 ‘반갑지 않은 손님’ 정도가 아니다. 3월초부터 황사가 계속되면서 아들은 아직도 10분에 한번 꼴로 기침을 해댄다.

그래도 지금은 좀 나은 편. 황사 뒤 며칠 동안은 2, 3분마다 콜록거리며 숨을 헐떡여 유씨의 가슴을 졸였다. 그뿐 아니다. 오존주의보가 내려지거나 오염이 심한 날이면 어김없이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연재순서▼

- 1. 사람잡는 대기 오염
- 2. 생태계도 변했다
- 3. 오염운반체 황사
- 4. 공기는 돈이다
- 5. 숨쉴수 있는 공기를

‘대기의 질’ 문제는 흔히 ‘부자 나라의 사치스런 생각’쯤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서울의 공기가 나쁘다지만 일반인들이 이를 몸으로 느끼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식, 심장혈관 질환자나 어린이, 노인 등 ‘생물학적 약자’는 현재 서울의 대기오염만으로도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가벼운 질환도 치유기간이 길어지거나 난치성 질환으로 발전하기 일쑤다.

1년여전 미국 플로리다로 이민간 한보인(韓寶仁·16)양에게 서울에서의 14년 생활은 ‘악몽’ 그 자체였다. 태어날 때부터 천식을 앓던 그는 공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숨이 차고 기침이 그치지 않아 병원 응급실을 안방 드나들 듯 했다. 학교에 못간 날이 간 날보다 더 많았을 정도.

우연히 한양을 호주에 두 달간 보냈던 어머니 정미옥(鄭美玉·41)씨는 아이의 천식증세가 서울의 오염된 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99년11월 남편과 아이를 먼저 미국으로 보낸 정씨는 “미국에 가자마자 딸의 천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며 “서울의 공기가 이렇게 나쁜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일반인은 괜찮다?

건강한 사람들 중에도 대기오염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2년째 ‘퀵 서비스맨’을 하는 이모씨(58)는 세수하면서 얼굴과 콧속에서 묻어나는 매연가루를 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콧속에서 나오는 분진의 색깔이 날이 갈수록 짙어지고 끈적끈적해지기 때문.

이씨는 “버스 뒤를 달리거나 한강을 건너 도심으로 들어서는 순간 숨이 콱 막힌다”며 “그러나 하루 3만∼4만원 벌이에 검진은 꿈도 못꾼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버스전용차로 단속원으로 일하는 김종석(金鍾錫·55)씨는 일하러 나갈 때 입마개와 모자를 꼭 챙긴다. 어쩌다 모자 없이 일할 경우 세수할 때 머리에서 연탄잿물이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도심 나설땐 마스크 '중무장'▼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인들도 갈수록 불안감에 휩싸인다. 날씨가 찌뿌듯할 때 도심의 거리에서는 역겨운 느낌이 코끝을 스친다. 희푸르스름한 스모그는 가슴을 옥죄는 것 같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곳에서 평생 살아야 하나’라는 의문만은 떨칠 수 없다.

▶건강에 얼마나 영향을 주나

현재 서울의 대기오염 수준은 정부가 설정한 환경기준치를 넘지 않는다. 그러나 기준치 이하에서도 시민들의 건강이 심각한 위해를 받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특히 지난해 대기오염물질의 85%를 차지한 자동차 배출가스 가운데 이산화질소와 미세먼지, 그리고 이산화질소 등의 2차 생성물인 오존의 영향은 현수준에서도 심각하다.

▼오존 0.1ppm 늘면 환자 37% 증가▼

대기오염에 가장 민감한 질병은 천식. 서울대 의대 조수헌(趙秀憲)교수와 한림대 의대 주영수(周永洙)교수가 94년부터 4년간 200병상 이상의 서울시내 49개 병원 응급실을 찾은 천식환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오존이 0.1ppm만 증가해도 환자수가 37%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14세 소아의 경우 무려 2.57배 늘었다는 것.

심장혈관 질환자들도 비슷하다. 단국대 권호장(權鎬長)교수와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페샤겐교수 등이 94년부터 3년간 서울시내 병원에 심부전으로 입원했다가 숨진 환자 1807명을 조사한 결과 대기오염이 심해질 경우(Interquartile Increase·현재 대기의 질을 4등급으로 나눠 1등급에서 4등급으로 떨어졌을 때) 환자의 사망율이 일반인의 그것에 비해 2.5∼4.4배에 이르렀다.

이 대기오염은 조기사망의 원인이기도 한다. 조교수와 권교수 등이 91년부터 5년간 서울시내에서 사망한 16만3007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오존이 0.1ppm 증가할 때 사망자가 평소에 비해 7% 가량 늘며 오존주의보 발령시에는 10%가 늘었다는 것.

또 인하대 산업의학과 홍윤철(洪潤哲)교수와 미국 하버드대 데이비드 크리스티아니교수 등이 91년부터 7년간 서울 등 7대 도시의 사망자를 분석한 결과 서울에서 아황산가스가 0.05ppm 증가할 때 사망자가 6.4% 늘며, 분진 100㎍/㎥가 증가할 때 2.7%가 느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 조교수는 “서울에서 매년 1000명 가량이 대기오염으로 인해 조기사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권교수도 “오염된 대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적이고 누적적”이라며 “오염도가 높지 않은 선진국 도시에서도 대기오염으로 1∼2년 정도 수명이 단축된다는 연구결과로 미뤄 서울의 공기가 일반인의 건강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자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치료비와 간호비 등 대기오염으로 인한 건강피해액이 연간 5조원에 이른다는 지적도 있다.

대기오염물질의 종류와 인체 및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항 목발 생 원피 해
이산화질소(NO2)자동차 배기가스질산 사용하는 공장기침, 천식 유발.광화학스모그 생성
미세먼지(PM-10)자동차 배기가스산업연료 연소과정기침, 천식 유발.기관지 손상
오존(O2)자동차 배기가스 중 이산화질소, 탄화수소가 햇빛과 반응천식 등 호흡기 질환 유발.눈 자극, 농작물피해
아황산가스(SO2)벙커C유, 석탄의 연소과정기침, 천식 유발.식물의 성장 피해
일산화탄소(CO)산소가 부족한 상태서 연소할때 발생 심근경색, 심장질환 악화.두통, 현기증 유발

▼'체증오염' 심한데 측정치 왜 낮을까▼

최근 들어 서울 도심에서 북한산을 선명히 볼 수 있는 날이 상당히 드물어졌다. 별빛은 물론 밤의 불빛도 멀리선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공기가 탁해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99년 국제통계연감에 따르면 한국의 단위면적당 오염물질 배출량은 오염이 극심한 멕시코의 9.3∼16.3배. 서울시의 단위면적당 배출량은 전국 평균의 15배가 넘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서울의 오염수치는 모두 환경기준치 안에 들어 있다. 수치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는 셈이다.

이처럼 시민들의 ‘체감오염도’와 실측치 사이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도 측정지점에 기인한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시내 27개 자동측정망의 설치장소 중에는 주택가의 동사무소 옥상이 16개소로 가장 많다. 나머지 11개소도 공원이나 정수장, 학교 등이다. 대부분 오염이 덜한 지역인 셈이다.

난방연료와 공장에서 오염물질이 주로 배출되던 90년대 이전에는 이런 장소가 더 적당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자동차가 급증하면서 오염원 가운데 자동차 배출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90년 48.8%에서 99년 85.2%로 크게 늘었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변과 공원녹지, 주택가 사이의 오염도 차이는 심할 경우 2배까지 벌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대전대 환경공학과 김선태(金善泰) 교수는 “대기오염도는 1차적으로 건강피해를 줄이기 위해 측정하는 것”이라며 “대기의 질을 제대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변을 추가하는 등 측정지점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측정소 위치에 대한 문제가 수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위치를 변경하지 않고 있는 것은 대기오염 수치를 ‘눈속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기획취재팀>하종대·민동용 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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