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용중/권력, 왜 신문시장 흔드나

  • 입력 2001년 3월 26일 18시 38분


언론개혁의 일환으로 정부가 신문시장에 직접 개입하겠다고 나선 것은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을 무력화하고 자연스러운 시장질서를 작위적으로 개편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분명하다.

▼비판紙 무력화위해 ‘告示’부활▼

공정거래위원회가 2년 전 신문고시를 폐지했던 것은 정부의 규제 철폐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그에 따라 신문업계가 자율적으로 과당경쟁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규제 철폐를 뒤집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공정위가 만든 신문고시안(新聞告示案) 가운데 무가지의 10% 제한, 공동판매제의 유도 등은 건전한 경쟁이나 사적인 판매 관행조차도 무시하면서 사기업인 신문의 시장싸움에 권력이 개입하겠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시장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유민주체제를 뿌리에서부터 흔들게 되는 위험천만한 도전이다. 시장질서를 외면한 정책이 과연 실효가 있겠는지, 더구나 정책이 공전(空轉)되고 결국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버리는 위험부담을 각오해야 할 사태가 되었다.

언론, 특히 신문과 권력은 때로 대립하고 갈등하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의존관계이다. 통치와 설득의 필수적인 방편인 언론을 떠나서는 하루도 존립할 수 없는 것이 권력이다. 그 권력을 일상적으로 밀착 취재해서 그 결정과 생각을 뉴스라는 상품으로 판매하면서도 권력의 탈선을 감시 비판해야 하는 언론과 권력의 관계는 진부하면서도 늘 새로운 과제다. 필요 이상으로 적대적이어서도 안되지만 동시에 유착이나 평화공존도 아닌 적당한 긴장관계라야 한다는 것이 그 때문이다.

금년 초에 김대중 대통령이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한 뒤 모든 언론사에 대한 무차별적 세무조사가 시작됐는가 하면 공정위도 신문사에 대해 시장조사를 벌이더니 그것이 끝나기도 전에 신문고시안을 다시 내놓았다. 권력의 필요에 따라 해제와 규제를 되풀이하는 가운데 언론개혁은 그 본질이 완전히 훼손되고 말았다. 신문끼리, 더구나 방송과 신문이 적의에 찬 대립과 분열상을 드러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오만한 권력개입의 책임으로 돌아가야 한다.

언론은 출혈과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경쟁해야 하는 속성이 있다. 특히 신문은 그 경쟁으로 오늘과 같은 부끄럽지 않은 위상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시장판도는 경쟁이 있는 상품시장이 빚은 당연한 질서라고 보아야 한다. 언론개혁, 특히 신문고시안은 그런 시장질서를 인위적으로 무너뜨리고 시장판도를 하향평준화하려는 저의를 깔고 있다.

신문이 경쟁의 부작용을 줄이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더구나 그 덩치와 목소리가 커지고 권력과도 맞먹는 힘을 지니게 되면서 자율규제가 바람직스러운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문업계의 자율적인 규제를 통해서만 이뤄져야 할 것이고 정부도 그 원칙을 거듭 밝혀왔다. 그러던 권력이 시장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것은 신문시장을 권력의 장악하에 두겠다는 발상이라고 할 만하다.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과도한 보호를 받을 필요도 없지만 동시에 권력이 불필요하게 언론시장을 참견할 필요도 없는 것은 바로 권력과 언론의 적당한 거리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권력은 그런 미묘한 문제에 덥석 개입하기보다는 관망하는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정부의 시장개입 때문에 언론개혁 자체가 성공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이 분별도 절제도 없이 신문시장에 개입했다는 평가만을 역사에 남기게 되었다.

▼과다경쟁 자율규제 바람직▼

91년 이래 정부와 신문업계를 대립시키고 있던 신문 서적 음반 등 지적상품에 대한 재판(再販)제도의 존폐를 놓고 10년에 걸친 논쟁이 일본정부의 후퇴로 매듭지어진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재판제도의 폐지 원칙을 내세웠던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경쟁정책의 관점으로는’ 재판금지가 당연하지만 아직 ‘국민적 합의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당분간 현상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당초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가정배달 등 시장의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시장질서를 외면하고 성급하게 규제를 부활하겠다는 한국의 공정위와는 너무나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정치적인 결정이다.

조용중(고려대 석좌교수·신문공정경쟁심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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