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그만의 고통일까

  • 입력 2001년 3월 26일 18시 38분


“봄날 파란 새싹을 보고 무엇을 느끼세요. 아름다운가요?”

1972년 9월 ‘초등학생 강간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5년간 복역하고 다시 15년간 숨어살다 재심을 청구한 정진석씨(67·가명). 그는 일주일 전 경기 안산시에 기자와 동행 취재를 다녀오다 문득 이렇게 물었다.

“그렇겠지요.”

“교도소 시절 재소자들은 운동장에 나가 파란 풀이나 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하고 그걸 뜯어 가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닥치는대로 풀을 뜯어먹었습니다. 왜냐고요? 70년대 교도소는 식사가 좋지 않아 영양실조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이가 빠져 잇몸에 고름이 차곤 했습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 풀을 뜯어먹었죠.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제가 왜 그토록 살고 싶었는지 아세요. 살아 나가서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그 전까지는 결코 죽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정씨는 지난해 말 기자를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그 사건 이후 30년동안 단 하루도 편하게 잠든 날이 없었다”고. 그러면서 “이제 죽을 때만이라도 편하게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말대로 정말 억울한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조급은 죄악’이라는 법 격언에 비춰 보면 적어도 그를 진범으로 ‘만든’ 과정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10일만에 범인을 검거하라는 당시 내무부 장관의 특별 지시, 그 시한 마지막 날 ‘범인’ 검거, 검거한 경찰관들에 대한 특진과 표창. 그리고 이어진 비상계엄과 유신(維新) 선포….

그는 소설 ‘25시’의 농부 모리츠처럼 시대와 권력의 힘에 짓눌려 최후의 시간 다음에 오는 시간, 그가 믿는 하느님의 구원으로도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는 시간 속에 빠져들었는지 모른다.

정씨 이야기에 대해 많은 인권운동가들과 법조인들은 ‘정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어두웠던 70년대 민초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증언이고 고발이라는 것이다.

이수형<사회부>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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