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재호/21세기 ‘낚시론’

  • 입력 2001년 3월 29일 18시 31분


김동길(金東吉) 전 연세대교수가 ‘낚시론’을 제기한 게 꼭 16년 전이다.

5공 정권 아래서 민주화 투쟁이 한창이던 85년 4월, 김교수는 김대중(金大中) 김영삼(金泳三) 김종필(金鍾泌) 3김씨에게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 낚시나 하라”고 권유했다. 세 사람이 서로 대통령이 되려고 싸우다가 80년 ‘서울의 봄’을 허망하게 흘려 보냈고, 이제 다시 후보 단일화를 이루기도 어려울 테니 그만 떠나라는 얘기였다. 그는 “40대가 앞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의 기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김교수의 ‘낚시론’에 대해선 격렬한 찬반 논쟁이 있었다. 반대론자들은 “3김이 민주화 또는 산업화에 기여했고, 아직도 그들의 주도하에 민주화 투쟁이 진행중인데 물러나라는 말이냐”고 목청을 높였고 그 배후를 의심했다.

‘낚시론’은 3김 퇴진을 주장했던 김교수 자신이 92년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한 편의 소극(笑劇)이 되고 말았지만 당시로선 충격적인 제안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낚시론’이 나온 지 16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3김의 위상과 힘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현직 대통령인 DJ를 다른 양 김과 한 범주에 묶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정치사의 긴 흐름 속에서 본다면 2001년 3월도 여전히 ‘3김 시대’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3김 시대’를 가능케 했던 구조적 이유는 민주화였다. 권위주의 정권이 존속하는 한 그에 맞서 싸울 사람이 필요했고 양 김이 기꺼이 그 고통스러운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JP의 경우는 조금 달라 산업화에서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진 후에는 역시 지역감정에 기초한 지역 할거주의가 3김에게 공생(共生)의 터전을 제공해 주었다. 유감스럽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춘 정국이 차기 대권에 뜻을 둔 사람들의 잰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강연회와 후원회가 앞다퉈 열리고 대권 예비 주자들은 벌써 자신을 알리기 위해 동서(東西)로 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 신경 쓰는 것은 이런 외향적 행사보다 3김과의 관계 정립일 것이다. 3김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느냐가 성패를 가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은 입으로는 “새 시대 새 정치”를 말하면서도 마음 속으론 ‘3김’이란 현실 앞에서 이미 체념한 채 개인적 이해득실만을 따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주자가 있다면 차라리 ‘낚시론’을 외쳤던 김동길 교수의 용기를 배울 일이다.

아울러 3김은 어떤 욕심도 버리고 차기 대선의 공정한 대선 관리자가 돼주었으면 좋겠다. 3김이 처한 상황이 저마다 다르고 그들에 대한 기대 또한 사람과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보다 더 신성한 역할은 없을 것이다. 3김 중 누구도 아직은 낚시하러 갈 생각이 없다면 그것이 국가에 대한 마지막 봉사일 터이다.

“3김의 동의 없이는 누구도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식의 떠도는 얘기들이 현실이 돼서는 곤란하다. “킹 메이커가 되겠다” “내가 진짜 킹 메이커다”는 식의 호언도 듣기에 거북하다. 그래서는 노추만 더할 뿐이다. 내년 대선이 끝나면 3김은 정말 유유자적하게 낚시터로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이재호<정치부장>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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