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혔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들뻘인 젊은 의원에게 대놓고 반박하기가 뭣해서 였을까. 아무튼 당시 권 최고위원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순명(順命)’이란 말을 남기고 일선에서 퇴진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의 ‘영원한 동지’인 그의 정치생명이 그걸로 끝나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시련은 일시에 ‘스타’로 떠오른 정 의원의 몫이 될 거라고 보는 눈이 많았다.
▷역시 그런 것 같다. ‘3·26 개각’으로 동교동계 구주류가 살아나면서 권노갑씨가 정치권 전면에 재등장했다. 그는 엊그제 자신의 2선 퇴진 발언에 대해 정 의원이 개인적으로 사과하기 전에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동안 가슴에 쌓아두었던 노여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꼭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재작년 ‘옷로비 사건’ 이후 작년 하반기까지 사실상 여권을 주도했던 세력이 동교동계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동안 누적됐던 국정난맥에 동교동계의 탓이 적지 않다. 사실 권씨는 ‘동교동계 좌장’으로서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와서 ‘새카만 후배 정치인’의 지난 발언을 두고 공개사과를 하라고 하는 것은 본말이 뒤집힌 격이다. 무엇보다 칠순이 넘은 ‘좌장의 품격’에도 걸맞지 않아 보인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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