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 ‘거목’ 김응룡감독(60.삼성).
그를 한마디로 특징지울 수 있는 단어는 없다.
‘카리스마’? 그는 “카리스마란 말이 뭘 의미하는 지도 잘 모르는 데 무슨…”하며 손사레를 친다.
명장? “뜻이 잘 맞는 좋은 선수들 만난 거지 뭘.” 한다. 하지만 ‘옥구슬도 잘 꿰야 보배’라고 아무리 좋은 선수가 많아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9번이나 일궈낼 수는 없다.
늘 ‘크레믈린’처럼 말을 아끼는 김응룡 감독. 그의 속내는 좀체로 알 수가 없다. 까만 선글래스 속의 눈은 어딜 보고 있는 지, 머리속엔 어떤 생각을 그리고 있는 지.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림이 없다는 이순(耳順)의 나이에 그는 새로운 배를 몰고 바다에 나섰다. 18년간 몸담은 해태를 떠나 ‘마지막 항해’에 나서는 김감독을 1일 대구구장에서 만났다.
황영조:안녕하십니까. 감독님.
김감독:마라톤 스타를 이렇게 보니 반갑구먼. 내 육상관계자들도 많이 안다구. 예전에 서울 반포쪽에 육상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서윤복씨라든가 그런 양반들하고 뉴반포테니스장에서 모여 맨날 같이 테니스 쳤어.
황:야구도 마라톤처럼 2시간, 3시간 하니까 비슷한 스포츠 아닐까요.
김:전혀 틀리지. 마라톤은 2시간10분, 20분, 30분대처럼 기록이 정해져 있잖아. 하루아침에 30분대 뛰는 선수가 2시간5분대로 진입할 수는 없지. 하지만 야구는 종잡을 수가 없는 스포츠지. 워낙 변화무쌍하니까. 실력대로 정통으로 맞혀도 안타가 안되는 게 바로 야구야.
황:그런데 야구선수들 보면 이해가 잘 안되는 게 하나 있어요.술 담배 다 하고 밤새 놀고 그렇게 하는데도 다음날 경기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잘 하던데요.
▼야구는 종잡을수 없는 스포츠
김:그러니까 이 야구라는 게 엄밀하게 말하면 운동이 아니란 거지. 다른 스포츠는 철저하게 몸관리를 해도 될까 말까인데 야구는 술 담배 해도 운동장에서 뛰는 게 가능하거든.
황:선수들 몸관리는 어떻게 시키시나요.
김:본인 스스로가 잘 해야지.야구는 1년이면 6, 7개월을 계속 경기해야 하거든. 마라톤 레이스처럼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자기 몸을 가꿔 나가야 돼.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당부하는 게 바로 술이야. 술은 운동선수에게 ‘독약’이나 마찬가지라구. 여자 사귀는 건 괜찮아.밤만 새우지 않으면 큰 상관없어.예전에 해태 선수들 그렇게 술 많이 마시더니 운동 오래 못하고 이제 다 은퇴했잖아. 요즘 선수들도 소주나 양주를 맥주 마시듯 벌컥 벌컥 들이키니….
황:감독으로서도 대선배이신데요. 이것저것 신경쓰이는 게 많으시죠?
김:선수때가 가장 좋지, 감독은 고역이야. 신경쓸 게 좀 많아야지.프로야구가 좀더 일찍 생겼으면 나 선수때 돈좀 벌고 감독 안했을 거야. 요즘 선수들 아쉬운 건 변명이 많아. 몸이 아프다, 집안에 일이 생겼다, 이런 저런 핑계가 많아.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운동장에 나가면 다 잊어버려야지.개인사정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면 운동선수라고 할 수가 없지.
황:스트레스도 많으실 텐데 버릇같은 건 있으세요.
▼긴장되면 손톱 물어뜯어
김:(손을 만지작 거리며)긴장이 되면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더라구. 손이 가만 못 있겠어. 해태시절엔 감독의자 양쪽 손잡이를 내가 다 파버렸어. 징크스는 별로 없는 데 팀이 자꾸 지면 그런게 의식이 되더라구. 연패에 빠졌을 때 영구차 보면 이긴다고 해서 괜히 영구차가 자주 지나다니는 도로로 나가본 적도 있어.
황:광주에선 거의 영웅시된걸로 아는 데 대구팬들의 반응은 어떻든가요.
김:대구사람들도 잘 대해주더라구. 식당에 가도 인사 많이 받지. 우승을 한번 시켜야지. 그러면 대구사람들도 더 좋아하겠지.
황:한때 ‘어∼동렬이도 없고,어∼종범이도 없고’ 이런 유행어가 TV에 나왔잖아요.
김:(웃으며) 거 그쪽 사람들이 다 유행시킨 거야. 내 기억으론 TV 인터뷰 할때 그런 말투로 얘기한 적 없어. 아마 우스개로 개그맨들이 만들어낸 것 같아.
황:그동안 광주에 혼자 계셨던 걸로 아는데….
▼나이들고 마음 약해졌어요
김:18년동안을 광주에 혼자 있다시피 했는데 빨래하고 밥먹으며 혼자 사는 게 이젠 지긋지긋하더라구. 광주음식이 맛있긴 하지만 매일 사먹으니까 그것도 질리고.미국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해 집사람이 미국에 가 있었는데 요번에 삼성으로 옮길 때 ‘나하고 같이 안 살면 야구 안하겠다’고 떼를 썼지. 큰 애도 귀국해 서울에 들어와 있어서 지금은 대구에서 아내하고 같이 있는데 전보다 훨씬 편해졌지.
황:예전에는 덕아웃에서 좀 화도 많이 내고 그러시지 않으셨어요? 의자도 집어던지고 하셨다던데….
김:아이고, 지나간 얘기는 하지도 마. 퇴장감독만 나오면 내 이름이 매스컴에 거론되곤 하는데 이젠 창피해.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나 싶어.
황:선수들도 많이 무서워했잖아요.
김: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그랬겠지. 그래도 요즘엔 많이 변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나도 이제 나이먹으니까 전보다 마음이 약해지더라구.
황:감독으로서 야구하시면서 철학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선수들에게 솔직하게 대하는 게 첫째야. 감독이 거짓말하면 선수들로부터 신뢰감을 잃게 돼.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행동해야 선수들이 믿고 따르지.
황:올해 목표는 우승이시죠?
김:이사람아, 마라톤하면서 2등, 3등을 누가 기억해주나.
<정리〓김상수기자>ssoo@donga.com
▼김응룡감독은?▼
▽1941년9월15일,평남 숙천에서 출생. 부친과 함께 월남
▽부산상고―고려대
▽1m85,100㎏
▽별명〓코끼리(국가대표 시절 1루에서 큰 몸집으로 넙죽넙죽 공을 잘 받는다고 붙여진 별명)
▽취미〓등산(예전엔 테니스도 많이 쳤으나 요즘은 안함)
▽술은 맥주 2병(나이들면서 많이 약해졌음) 담배는 전혀 안함(집안내력. “할아버님 ,아버님도 집안에서 담배태우시는 걸 본적이 없다”고)
▽애창곡〓목포의 눈물
▽아내 최은원씨(60)와 큰 딸 김혜성(28), 작은 딸 김인성(26·미국 유학중, 플룻 전공)
▽야구시작〓1955년
▽주요기록
61년〓실업야구 한일은행 데뷔
65, 67년〓실업야구 홈런왕
71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국민훈장 석류장
77년 대륙간컵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체육훈장 백마장
73∼81년〓한일은행 감독
82∼2000년〓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감독
98년〓프로 첫 단일팀 감독 1000승
2000년〓프로 첫 감독 2000경기 출장,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획득, 시즌뒤 삼성감독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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