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정문쪽에서 한 차량이 어둠을 가르며 도착했다. 동아일보 대전 서둔산지국의 신문운반 차량이다. 이들 부부는 서둘러 200부씩 나눠 가진 뒤 “차조심 해. 이따 보자구”라는 말과 함께 서로 반대방향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서씨 부부의 하루는 매일 이렇게 시작된다.
이들 부부가 동아일보 배달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신문배달 소리에 새벽 잠이 깬 김씨는 12평짜리 임대 아파트 단칸방에서 몸을 쪼그린 채 자고 있는 남편과 딸 보람양(8·초등1년), 아들 정원군(7)의 얼굴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조금 큰 집으로 옮기면 다리나 쭉 펴고 잘 수 있을텐데…. 신문을 배달하면 경제적으로 다소 도움이 되겠지.”
김씨는 곧바로 평소 구독하던 동아일보 지국을 찾아갔다. 일은 바로 시작됐다. 오전 2시반에 일어나 오전 7시까지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신문을 돌리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맹추위에 폭설도 잦았던 지난 1월에는 감기몸살까지 겹쳤다. 그래도 억척같이 배달을 계속해 신문이 배달되지 않았다는 독자들의 항의전화를 한 통도 받지 않았다.
“신문은 제때 안돌리면 안되잖아요. 또 동아일보는 다른 사람이 집어가는 경우가 많아 제호가 안보이게 엎어 놓아야 해요.”
새벽길에 취객에게 봉변을 당할뻔한 적도 있었다. 파김치가 돼 들어오는 아내에게 서씨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만류했으나 일주일쯤 지나자 남편도 거들기 시작했다.
대우전자 청원물류기지에서 창고관리원으로 있는 남편과 아파트 청소 일을 하고 있는 김씨로서는 사실 신문배달은 무척 고된 일이다. 잠은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잔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1년간 신문배달로만 모두 600만원을 모았다. 서씨의 직장(대우전자 청원물류기지) 월급 등으로 번 돈을 포함해 한달에 160만원씩 적금을 들고 있다.
“일요일에는 아이들이 밖에 나가자고 조르지만 지쳐서 방안에 쓰러져 있기 일쑤예요. 하지만 내년 봄에는 단칸방에서 벗어나요. 두 아이의 방을 꾸며줄 수 있는 24평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가거든요.” 큰 집으로 이사한다는 희망에 부풀어 뛰다보면 어느새 오전 7시쯤이 되어 배달이 끝난다.
“춥지 않았어?” 서로 걱정해주고 격려해주는 이들 부부 앞에 밝은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대전〓이기진기자>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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