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원/엉뚱한 '30대그룹' 선정

  • 입력 2001년 4월 2일 22시 57분


“그룹이 어떻게 될지 모를 위기감이 팽배해 있는 터라 재계 2위에 선정되고 보니 어리둥절하다.”(현대그룹 고위관계자)

“30대 그룹을 선정하는 틀을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나왔다.”(경제단체 한 임원)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30대 그룹을 새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 그룹(5위)과 포항제철(7위), 하나로통신(23위), 태광산업(29위) 등 6곳이 새로 편입됐다. 눈에 띄는 것은 삼성그룹이 핵분열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그룹을 밀어내고 ‘재계 맏형’자리에 올라선 점.

이 같은 선정결과에 대해 “현실성이 모자란 점이 수두룩하다”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부터 자금난에 빠져 고전중인 현대가 삼성에 이어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역시 ‘자금난 덫’에 걸려 있는 고합그룹도 30대 그룹에 속해 있다. 30대 그룹 선정을 ‘자산총액’이라는 잣대로 재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실질적인 그룹 위상과 공정위가 뽑은 30대 그룹 사이에 커다란 체감(體感)괴리가 있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총자산’이라는 잣대는 부채까지 포함되는 개념이다. 당연히 남의 돈(은행빚)이 많으면 총자산도 덩달아 올라간다. 이 때문에 부채가 많을수록 재계 순위가 올라가는 ‘웃지 못할’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돈을 빌리는 것도 기업의 능력’이라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30대 그룹 선정이유가 효율적인 경제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제대로 된 잣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실질적인 기업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현금흐름 규모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자산총액으로 기업 크기를 재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30대 그룹을 지정한다는 것 자체가 기업에 족쇄를 채우기 위한 것이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동원기자>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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