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Taylor Hackford
출연: Al Paccino, Keanu Reeves
로마는 세 차례 세계를 정복했다고 한다. 무력으로, 기독교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법으로. 20세기 미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현대의 로마제국, 미국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는 대학자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의 저술의 제목대로 법의 제국(Law's Empire)이다.
국제사회의 분쟁에서도 미국은 자신의 법과 논리를 중요한 무기로 내세우고 모두가 이를 따를 것을 주문한다. 수십만의 현역변호사가 법의 제국의 정규군이다. 이 숫자를 능가하는 법과대학원생들이 예비사관의 길을 걷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미국의 법률사관학교( Law school)의 문을 두드리는 유학생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햄버거와 블루진처럼 이제 미국의 법은 세계인의 기준으로 통용되다시피 한다. 미국인에게 법은 가히 새로운 종교이다. 미국인이 경배하는 헌법전을 시민종교의 경전이라고 일컫는 표현이 낯설지 않듯이 법은 이미 미국인의 종교이다.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은 법으로 세계를 정복한 미국 제국에 심각한 위기가 도래했음을 경고하는 작품이다.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영화는 윤리가 사라진 법은 악마의 시녀에 불과함을 고발한다. 법이라는 외형과 절차만 갖추어지면 곧바로 정의의 탈을 쓰게 되는 것이 제국의 현실이다.
이 작품의 외형적 줄거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시골의 형사사건 전문변호사가 뉴욕의 대형 로펌에 스카웃된다. 한 동안 승승장구하나 그 과정에서 가정이 파탄난다. 정의를 외면한 채 오로지 승리만을 추구하면서 '피묻은 돈'을 탐하던 그는 최후의 순간에 윤리적 자각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싱거운 줄거리의 이면에 숨은 메시지는 무겁기 짝이 없다.
배심을 상대로 한 케빈의 탁월한 변론기술에 투자한 법률회사는 전세계의 악의 대변인이다. 무기와 마약 밀매, 테러와 살인, 온갖 국제적 악을 법의 이름으로 지켜주는 이 회사의 주인 밀턴은 새로운 천년왕국을 건설하려는 야망의 소유자이다.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라는 화두와 '낙이불음'(樂而不淫)(taste but not swallow) 을 행동강령을 표방하는 법교(法敎)의 교주이다.
'햄릿'역으로는 너무 늙었고 '리어왕' 역으로는 덜 늙은 대배우 (알 파치노)에게는 더없이 적격인 배역이다. 법은 :새로운 종교"이고 "20세기는 나의 것"이었음을 공언하는 그에게는 권력, 돈, 섹스가 자유의지의 연장이며, 윤리적 죄책감이란 '벽돌처럼 쓰러뜨리면 그만'인 단순한 장애물에 불과하다. 이른바 참된 '사랑'이란 것도 초콜릿을 먹고 난 후 2분간의 행복감과 다름없는 찰나적 환상일 뿐이다.
무수한 자신의 사생아 중 하나인 케빈을 후계자로 삼아 새 천년 법의 왕국을 상속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선에 지혜롭고 악에 미련할 것"을 (로마서 16장 19절) 강론하는 어머니의 편협한 '교회로부터 가석방'중인 케빈이 겪는 유혹과 타락, 성공과 좌절도 모두 밀턴의 후계자 양성계획의 일부이다.
윤리를 뺀 '자유의사'는 악으로 향하는 직행열차의 예약표이다. 영화는 대도시 생활의 외로움과 소외감, 그리고 악에 대한 힘겨운 저항으로 미쳐버린 아내가 죽는다. 이를 계기로 윤리적 각성에 이른 케빈이 밀턴의 왕국을 탈출하기 위해 자살하는 것으로 사실적 부분을 마감한다.
지루할 정도로 길고 난해한 밀턴의 설교 장면은 영화가 던지는 철학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관객에게는 오히려 아쉬운 여운을 남겨준다. 케빈, 청년예수, 예수를 대신한 새로운 종교의 교주 밀턴의 얼굴이 차례 차례로 비치면서 혼돈의 법의 제국의 몰락을 영상으로 전한다. ,
이어서 케빈의 부활을 상징하는 장면이 법정에서 재현된다. 66전 전승, 승승장구의 출세 가도를 달려온 그의 법정경력이 윤리적 자각과 함께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요한계시록(18장)의 전언대로 불기둥이 된 악의 도시 바빌론(뉴욕)의 장엄한 멸망이 한줄기 빛이 되어 가슴을 파고든다.
윤리가 절멸되어 가는 현대법체계 전체에 대한 묵시론적 예언일지도 모른다.
<서울대 법대 교수>ahnkw@plaza.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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