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세계 AIDS 협회에서 맹렬한 활동을 벌이며 동성애자들의 인권보호 운동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비록 지금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가십의 주인공이 됐지만 그는 69년 발표한 앨범 ‘Empty Sky’로 데뷔해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 오랜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팝스타며 영국 황실이 인정한 세계적인 유명인사다.
엘튼 존은 97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이애나 비의 죽음을 애도한 ‘Candle In the wind'로 TV 앞에 모인 20억 인구에게 감동을 주었다.
많은 음악팬들은 엘튼 존을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나 ‘Goodbye Yellow Brick Road' 같은 히트곡으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30여 년간 세계가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는 역동적인 이미지와 변화무쌍한 카리스마에 있다.
피아노의 애잔한 선율과 격정적인 무대 매너를 선보여온 엘튼 존은 그간 발표했던 앨범을 통해 소울, 디스코, 컨트리, 고전적인 팝 발라드, 심지어는 프로그레시브 록까지 음악적인 역량을 팬들에게 선사했다. 이런 카멜레온 같은 음악행보는 그를 최고의 레코딩 아티스트로 만들어 놓았다.
그에게는 영광이라는 꼬리표만 따라 다닌 것은 아니었다. 76년 롤링스톤즈와의 인터뷰에서 동성애자라고 밝힘으로서 보수적인 팬들은 그를 외면했고 술과 코카인으로 성대결절이라는 치명타를 입기도 했다. 그럼에도 엘튼 존은 이런 불운을 음악으로 극복했다.
얼마 전 통산 13번째 앨범을 발표한 이문세는 엘튼 존처럼 국내에 보기 드문 레코딩 가수이다. 물론 그의 영원한 꼬리표인 ‘별밤지기’는 그의 음악적인 성과물 만큼이나 이문세를 지배하는 요소이다.
비록 가수라는 본업보다는 DJ로서 이름이 알려졌지만 1983년 1집부터 계속된 그의 음악 작업은 늘 잔잔하지만 변화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늘 일상의 풍경을 담고 팬들의 곁에 머물러 왔다. 추억의 광화문 거리를 걷는다거나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사랑의 다짐을 노래했다.
이런 이문세의 음악은 1985년 3집부터 함께한 음악 파트너 이영훈을 만나면서 꽃 피기기 시작해 4집을 통해 정점에 올랐다. ‘사랑이 지나가면’, ‘그녀의 웃음소리 뿐’ 그리고 ‘시를 위한 시’, ‘옛 사랑’으로 이어지는 그의 음악 행로는 DJ 이문세 이상의 가치이다.
특히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붉은 노을'에서의 록 적인 요소부터 ‘이별 이야기’, ‘그대와 영원히’에서의 애잔한 사랑 발라드를 소화하는 그의 가창력은 80년을 넘어 세기가 바뀐 현재까지 이문세를 팬들이 기억하는 단초이다.
비록 90년 초 댄스 음악의 열풍 속에 발표된 몇 장의 앨범이 실패해 추억의 가수가 될 위기도 겪었지만 96년 ‘조조할인’으로 돌아온 그에게 다시 한번 팬들은 가요 차트의 정상을 선물했다. 늘 방송을 통해 만날 수 있지만 이문세가 식상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보여지기보다 들려지기를 원하는 그의 노력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2001년을 넘어 먼 훗날에도 그의 음악은 그간 그의 활동처럼 들려지기를 원할 것이다. 엘튼 존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저명한 인사로 기억되기 보다 그의 음악으로 기억되는 것처럼.
류형근 <동아닷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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