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우익교과서 검정통과]시름에 빠진 정부

  • 입력 2001년 4월 3일 18시 30분


‘한일관계의 악순환이 언제까지 되풀이될 것인가.’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가 발표된 3일 외교통상부는 깊은 시름에 잠겼다. 한일관계의 특성상 이번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양국 관계에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줄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교과서 내용을 충분히 검토해 단계적으로 적절히 대처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국민 여론이 정부의 이런 방침을 받아들일지 걱정이다. 정부의 이런 고민은 일부 언론의 강성 보도에 대한 소극적 대응에서도 묻어난다. ‘정부가 교과서 불채택 운동을 검토한다’ ‘주일 한국대사 소환까지 검토되고 있다’ 등의 보도에 대해 정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며 비공식 대응에 그쳤을 뿐이다.

정부 차원에서 ‘불채택 운동’을 벌일 경우 ‘내정 간섭’으로 비화될 소지가 있고 ‘주일 대사 소환’은 극단적인 조치로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정부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언론에서 ‘정부가 대일 수교 단절을 검토한다’고 ‘오보’를 내더라도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그만큼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는 게 한일관계의 특성”이라고 털어놓는다.

지난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협상이나 노근리 매향리 사태로 반미 감정이 거세질 때 정부는 앞장서서 “지나친 반미 감정은 국익에 이롭지 않다”고 자제를 요청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자세다. 정부 당국자는 “만약 정부가 ‘지나친 반일 감정은 국익에 해롭다’고 발표하면 어떤 돌팔매를 맞을지 상상해 보라”며 한일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일부 학계에서 주장하는 ‘정부가 북한 중국 등과 공동전선을 형성해 일본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부는 난색을 표명한다. 이는 오히려 일본을 자극해 교과서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한일 양국은 98년 10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형성된 ‘21세기의 미래지향적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이 이번 사태로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문제는 양국 관계는 충분히 그런 최악의 상황으로 비화될 수 있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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