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5개국에서 1500여 출판사가 참여한 올해 박람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동물 삽화(일러스트레이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점. 이번 행사에서 e북 게임류 등 뉴미디어 전시장이 옹색하고 빈약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비해 전시장 초입에 마련된 ‘어린이 도서 일러스트레이터전’에는 사람들이 크게 붐볐다.
이번 일러스트레이터전에는 2100여명의 작가가 출품했고 가장 관심을 끈 동화(픽션) 부문에는 92명의 작품이 뽑혀 전시됐다.
올해의 특징은 어린이 일러스트가 무조건 예쁘고 발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는 점이다. 오히려 거칠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작품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런 작품들은 마치 흑백 사진을 거칠게 찢어붙인 콜라쥬를 연상시킨다. 주로 프랑스 벨기에 독일 폴란드 등 아동문학의 전통이 강한 유럽 작가의 작품들이다.
올해 행사에서 권위있는 ‘볼로냐 라가치 어워드(Bologna Ragazzi Award·볼로냐 어린이상)’ 유아부문 수상작은 독일의 ‘페페는 어디로 숨었지?’가 뽑혔다. 이 작품이 수상작으로 결정된 것은 색연필로 낙서하듯 장난스럽게 그린 비브케 외서(34)의 삽화 덕택. 그림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흔히 동원되는 컴퓨터 그래픽을 일체 사용하지 않았으며 아이들이 도화지에 그린 낙서그림 같은 효과를 연출했다.
유아부문 가작 수상작인 ‘리틀닷컴’(영국) 도 비슷하다. 까만 점 하나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그림책의 내용은 어린 아이들이 종이위에 물감으로 장난을 쳤을 때 나타나는 기기묘묘한 형상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인 안네 보탱(24)은 “어린이책 그림에 갈수록 독창성이 요구되는 것은 어린이들의 개성을 존중해 주는 배려”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단순한 그림으로 정서적인 공감대를 끌어내려는 움직임도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출품작의 내용면에서 볼 때, 전통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도 올해 도서전의 두드러진 경향이다. ‘해리 포터’와 같은 판타지 아동물에 지나치게 편향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대응책으로 보인다. 독일어권 전래 동요를 코믹한 그림과 함께 수록한 ‘오즈비제보제’(벨기에)가 이번 ‘볼로냐 라가치 어워드’ 픽션 아동(6∼9세)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된 것이 이런 현상을 보여준다.
<볼로냐(이탈리아)〓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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