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低)현상을 어느 정도 묵인해온 미국과 아시아 각국이 최근 자국 통화에 미치는 악영향과 수출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일제히 ‘엔저 반대’ 목소리를 높인 것이 영향을 미쳤다.
경기하락에 부심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지난 주말 긴급경제대책을 내놓았으나 주가하락세를 막지 못했다.
▽엔저 반대〓8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폐막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재무장관회의는 “최근의 엔저 현상은 ASEAN 지역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해 지속적인 성장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지난달 이후 엔화가치 하락과 동시에 인도네시아 루피아, 싱가포르 달러, 한국 원 등 아시아국의 통화 가치도 97년 외환위기 때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날 ASEAN+3(일본 중국 한국)의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미조구치 젠베(溝口善兵)일본 재무성 국제국장은 “엔저를 일부러 유도하지는 않는다. 필요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아시아국가의 이해를 구했다.
일본 경제의 급격한 후퇴를 우려해 어느 정도는 엔저를 용인해온 미국도 최근 태도를 바꿨다. 폴 오닐 재무장관 등은 “구조조정을 외면하고 엔저로 경기회복을 꾀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일본 정부가 엔저 현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비판했다.
이처럼 미국과 아시아 각국이 엔저에 거부반응을 보이면서 엔화가치 하락세는 지난 주말부터 진정되고 있다.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는 2일 달러당 126.39엔까지 떨어졌으나 6일 124.79엔으로 올랐으며 9일에도 124.50엔 안팎에 거래됐다.
▽일본 증시 하락〓9일 도쿄증시의 닛케이평균주가는 지난 주말보다 542엔이 떨어진 12,841.76엔으로 마감됐다. 이날 기록된 4.05% 하락률은 올들어 두 번째로 큰 것.
이날 도쿄증시는 지난 주말 미국 증시의 폭락장세와 일본 정부가 내놓은 긴급경제대책에 대한 실망감으로 장이 열리자마자 매도주문이 쇄도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주말 ‘2년 내 부실채권 정리’ 등을 골자로 하는 긴급경제대책을 확정해 발표했지만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실효성이 없고 고용불안 등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 닛케이주가는 지난주에는 정부 대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나흘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하야미 마사루(速水優)일본은행 총재는 “경제는 당분간 침체국면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부실채권을 털기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다”고 경고했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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