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영화 속에서 딸의 남자친구가 딸에게 믹서를 선물하자 딸이 막 결혼 안한다고 화를 내는 장면이 있어요. 믹서를 선물하는 건 여자를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존재로 무시하는 거라는 그런 뉘앙스로 엄청 화를 내는데. 제 정서로는 정말 이해가 안가더라구요. 그야 남자친구가 옷이나 보석같은 걸 선물했다면 더 신났겠지만 믹서도 나쁜 선물은 아닌데...“미국에선 믹서가 애물딴지인가 봐?...”하고 생각했죠.
전 믹서를 동생에게서 선물 받았습니다. 제가 탐내던 튼실한 믹서가 있어서 생일선물로 사달라고 졸랐죠. 그래서 우리집에 오게 된 믹서는 박스채 싱크대 안에 고이 모셔진 채 2년을 살았죠. 뭐, 특별히 믹서로 갈아먹을 게 없더라구요. 또 덩치도 큰 걸 꺼냈다가 다시 닦아서 넣는 것도 귀찮고...하여 제 믹서는 어두운 싱크대 안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게 된 것이죠.
얼마 전 냉장고를 뒤지다가 몇 알 안남은 딸기를 발견했어요. 이걸 그냥 먹자니, 간에 기별도 안가겠고, 그냥 두면 무를 것 같고. 그 때 갑자기 싱크대 안의 묵묵한 믹서가 떠올랐습니다. “딸기우유를 만들어먹자!”
어렸을 때 저희 엄마는 딸기랑 바나나를 섞은 우유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 때만 해도 바나나가 엄청 비싸던 시절이라 딸기 이따만큼에 바나나는 겨우 한개나 반개가 들어갔지만 그래도 바나나가 들어간 맛과 안 들어간 맛은 천지차이였죠. 요즘 바나나를 한 덩어리 사놓고 세월아, 네월아~ 먹다보면 참, 그 옛날 바나나 비싸던 시절이 꿈만 같아요. 그 땐 바나나 한개를 통째로 먹고 싶어서 온갖 잔머리를 굴렸었는데...
아무튼 몇알 안남은 딸기와 바나나 반 개, 우유 반잔과 설탕을 넣고 “드르르~”돌리면 걸쭉하고도 맛있는 바나나 딸기 우유가 되는 것이죠. 믹서 돌리는 소리가 워낙 시끄럽지만 성능이 끝내주는 제 믹서로는 10초 정도만 돌렸는데도 금방 부드러운 우유가 되더라구요. 약간은 딸기나 바나나가 씹히는 것도 좋은데 그러려면 더 짧게 돌려줘야 하나봐요.
이 바나나 딸기 우유는 맛도 예술이지만 한잔 마시고 나면 속도 엄청 든든해요. 부지런한 주부라면 아침에 남편을 위해 한잔 “드르륵~”돌려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건강을 생각한다면 설탕대신 꿀을 넣어도 괜찮구요. 아침마다 토할 것 같은 녹즙이나 당근즙을 먹고 인상 찌푸리고 출근하는 것 보다 맛있는 바나나 딸기 우유를 먹고 나가면 하루가 얼마나 즐겁겠어요?
향긋하고 달콤한 우유 한잔으로 시작하는 아침, ‘신부의 아버지’의 남자친구는 그런 아침을 상상하며 믹서를 선물한 게 아닌가 싶네요...
***바나나 딸기 우유 만드는 법***
재 료 : 딸기 4알, 바나나 반개, 우유 반컵, 설탕이나 꿀
만들기 : 1. 딸기를 깨끗이 씻어 꼭지를 떼어낸다
(딸기의 콕콕 박힌 딸기씨마다 농약이 배어있대요. 정말 깨끗이 씻어야해요...)
2. 딸기와 바나나, 우유, 설탕 적당량을 믹서에 넣고 잠깐만 돌린다.
ps. 믹서는 청소하기가 짜증나죠. 오토 클린이란 단추를 눌러봤지만 별로 “clean"하지 않더라구요. 믹서 청소는 죽어도 하기 싫다면 약식 딸기 화채를 만들어 드세요. 딸기와 바나나를 얇게 저며서 우유와 함께 먹는 거죠. 시리얼과 같이 먹어도 맛있구요. 그리구 그릇만 쓱싹 닦아놓으면 끝! 게으름 여왕들도 다 살길이 있답니다.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