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순의 대인관계 클리닉]아이 성적표가 내 인생의 성적표?

  • 입력 2001년 4월 10일 18시 36분


30대 중반의 주부 강모씨. 초중고교 시절을 통틀어 그녀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어쩌다 중간, 아니면 그 이하가 대부분이었다. 덕분에 대학도 좋은 곳에 못 갔다. 그래도 좋은 남자 만나 결혼은 잘했다.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 두 아들 역시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다. 중간은 넘는 정도였지만. 진짜 문제는 엄마가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평소 경쟁심과 질투심이 병적으로 강한 그녀였다. 그런 성격대로라면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잘했어야 하지만 그건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집에서 아무리 닦달해도 소용이 없었다. 대신 예쁘게 꾸미고 선생님들한테 잘 보이는 것으로 경쟁했다.

그런 그녀가 자기 아이들은 예쁘고 건강하고 공부까지 잘해 주기를 바랐다. 아이들 시험 때면 옆에 붙어앉아 함께 예상문제들을 달달 외웠다. 시집살이 맵게 한 며느리가 더 독한 시어머니 되는 수가 있다더니, 그녀가 바로 그랬다. 학교 다닐 때 공부 때문에 어지간히 부모 속을 썩인 그녀 아닌가. 웬만하면 내 아이만은 절대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할 법하건만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자신과 아이들을 들들 볶던 어느 날 그녀가 내뱉은 말이 더 재미있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지금처럼 공부했으면 서울대학교도 들어가고 남았겠다!”

아이 성적표가 곧 내 인생의 성적표인 부모들,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일류대에 넣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부모들은 생각보다 많다. 물론 어느 면으로서는 그런 부모들을 탓할 수 없다. 어쨌든 일류 대학을 나와 줄을 잘 서야 출세하는 게 우리 사회 아닌가. 더구나 앞으로도 그런 패거리 근성은 좀처럼 사라질 것 같이 보이지 않는데, 나만 손 놓고 있을 부모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백번 그 심정을 이해한다 해도 애초부터 공부와는 거리가 먼 아이를 두고 경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기가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한 것에는 너그러운 사람이 아이 성적에 집착하는 것도 다 잘못된 경쟁심 탓이다. 그리고 아이를 자기의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경쟁과 소유욕은 아이가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미래 전체를 잘못된 길로 이끌 수도 있다. 나한테 너그러운 만큼만 아이에게도 너그럽다면, 그리고 공부보다는 아이의 적성과 소질을 반만이라도 살려준다면, 그런 오류는 미리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www.mind―op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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