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질환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들이다. B형간염은 대부분 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생긴다. 바이러스를 무찌르는 훌륭한 ‘무기’가 이미 ‘전장’에 나와 있으며 이와 성능이 유사한 또 다른 ‘무기’도 개발되고 있다.
최근 간질환 치료 부문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토머스제퍼슨의대 한혜원교수(65)가 지난달 24일 귀국, 서울 부산 대구 등 6개 도시에서 의사 400여명과 일반인 600여명에게 ‘간염치료의 최신경향’이란 주제로 강의하고 5일 떠났다. 출국 직전 한교수를 만나 간염 환자 및 가족들에게 유용한 최신정보를 들었다.
▽인터페론―α와 라미부딘〓90년대말까지 인터페론―α 주사가 간염을 치료하는 거의 유일한 무기였다. 인터페론―α는 서양인의 40∼50%에게 효과가 있지만 동양인에게는 20% 정도 밖에 효과가 없다. 게다가 근육통 식욕감토 체중감소 등 부작용이 컸다.
199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고 이듬해 말 국내에 선보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의 라미부딘은 동양인에게도 잘 듣는다. 이 약은 원래 에이즈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B형간염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효과가 밝혀져 두 가지 질병의 치료제로 동시에 쓰이고 있다. 1998년초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에이즈치료제 에피비어를 간염 치료제로 속여 팔던 약국들을 적발했다고 요란을 떨었는데 에피비어가 바로 라미부딘이다.
라미부딘을 9개월∼4년 복용하면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없어지고 △GOP GTP 등 간세포가 깨지면서 나오는 효소의 수치가 떨어지며 △바이러스가 복제될 때 생기는 e―항원이 사라지거나 이에 대한 항체가 생긴다. e―항원이 사라지고 3개월 뒤 검사해서 이 상태가 유지되면 약을 끊는다. 간염이 완치됐다는 뜻이다. 간혹 재발해 e―항원이 생겨도 치료시기가 짧아진다.
▽돌연변이 걱정할 일 아니다〓국내 의사들 중 “라미부딘은 B형 간염 바이러스를 억제할 뿐 전멸시킬 수 없으며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약에 대해 ‘방어막’을 갖추게 된다”면서 처방을 꺼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한교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라고 잘라 말한다. 라미부딘 복용 뒤 6개월부터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나고 1년 뒤 14∼32%, 4년 뒤 67%까지 늘어나는 것은 사실. 그러나 돌연변이 바이러스의 방어막은 약해서 라미부딘이 충분히 뚫을 수 있다. 처음에 약이 잘 안 듣지만 조금씩 방어막을 무너뜨린다는 것.
라미부딘은 가벼운 간경변증 환자의 푸석푸석한 간을 원상태로 돌려놓는 효과까지 있다. 바이러스가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바이러스 보유자와 급성 B형 간염 환자에겐 이 약을 쓰지 않는다.
▽새 치료제들〓라미부딘에 이어 다른 치료제도 속속 등장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질리아드 사이언스사의 아데포비아는 1, 2차 임상시험을 끝내고 3차 임상 시험 중이다. 한교수는 이 약에 대한 임상시험도 맡고 있는데 “라미부딘 복용 뒤 돌연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를 쉽게 퇴치할 수 있지만 콩팥에 독성이 있는 것이 흠”이라고 말했다. 라미부딘과 병행 투여해 간염 완치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엔테카비어 엠트리시타빈 등 치료제도 임상시험 중이다.
▽“헌혈로 암 예방”〓한교수는 혈액에서 철분이 너무 부족하면 빈혈 등의 증세가 생기지만 반대로 너무 많으면 인체에 해로운 ‘활성산소’를 만드는데 쓰여 노화 및 암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세계 처음으로 밝혔다.
한교수는 간염 간경변 환자 250명을 대상으로 조사, 혈중 철분이 0.3㎎/㎗ 이상이면 50%가 간암으로 진행되지만 그 이하이면 20%만 간암으로 악화된다는 사실과 함께 철분이 많을수록 간경화 간암으로 진행되는 속도가 빨라짐을 밝혀냈다. 미국에선 현재 ‘닥터 한의 이론’에 따라 간경변증 간암 환자의 혈액을 빼서 철분을 줄이는 치료법을 쓴다.
한교수는 “현대는 ‘철분 과잉의 시대’이기 때문에 임산부나 생리 중인 여성 외엔 철분을 과다하게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면서 “혈액 검사 결과 철분이 과다하다고 나오면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분은 육류 특히 근육, 간, 선지 등에 많다. 헌혈은 몸 속에 철분이 쌓이는 것을 막는 최상의 방법이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한혜원 교수는…
“그 한혜원이 바로 너니? 넌 이혜원이잖아.”
미국 토머스제퍼슨의대 한혜원교수(65)는 가끔 옛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애기를 듣는다. 그는 성이 이씨였지만 1966년 미국에서 서울대 의대 동기생인 한수웅씨와 결혼하면서 남편 성을 따랐다. 한교수는 “당시 주위의 한국인 의사 대부분이 ‘닥터 리’였던 것도 성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고 귀띔했다.
한교수는 인터페론―α, 라미부딘, 아데포비어 등 간염 치료제 임상시험 및 치료에서 항상 세계적으로 ‘선두’에 있었다. 그는 국내에도 ‘팬’이 많다. 이번에 귀국 강연회 땐 의사 400여명 뿐 아니라 국내 환자 40여명도 알음알음으로 그를 찾아왔다.
한교수는 1963년 서울대병원 수련을 마치고 하버드대의대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세우고 무작정 하버드대가 있는 보스턴 부근의 우스터시립병원에 들어갔다.
2년 뒤 ‘하버드 진입’이란 꿈을 이뤘고 71년 필라델피아암연구소로 옮겼다. 이곳에 B형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의학상을 받은 바루치 블럼버그박사가 있었다. 그는 블럼버그박사를 도와 세계 처음으로 B형간염 백신을 개발했고 곧이어 서울대병원 김정룡박사가 국내 최초로 B형간염 백신을 개발하는데에 큰 도움을 줬다.
한교수는 “나는 두더지처럼 한 길만 팠으며 길을 파다보면 새 길이 나왔다”고 말한다.
63년 홀트복지재단에서 미국 간호사와 함께 봉사활동으로 아이들을 치료하면서 미국 문화와 영어를 익혔다. 막상 미국 우스터시립병원에선 영어가 달리고 담당 교수가 마스크를 쓴 채 조용조용 얘기하는 통에 도무지 말을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챠트를 또박또박 쓰고 환자 치료 보조를 제대로 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는 서울대병원 수련의 시절 철저히 공부한 덕분이었다. 필라델피아암연구소에서도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결국 모두가 인정받는 위치에 섰다는 것이 주위의 설명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아요. 간염 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저것 좋다는 것에 혹해 돌아다니면 몸만 망치게 되죠. 의학적으로 확립된 치료법을 믿고 따르면 결국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B형간염 예방하려면
간염 바이러스는 주로 혈액을 통해 옮긴다. B형간염은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로부터 병을 얻는 모자간 수직감염이 가장 많고 면역력이 약한 어릴적 감염이 그 다음. 태어날 때나 어릴 적 감염되면 바이러스 보유 상태로 남았다가 20∼40여년 뒤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발병한다.
그러나 어른 때 감염되면 급성기를 거쳐 자연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미열 피로감 복통 설사 등이 나타나고 1, 2주 뒤 황달과 함께 대변의 색이 엷어지고 진노랑색 소변이 나오다가 4∼12주 회복된다. 단 이때 과로 음주 등으로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낫지 않고 간경변증 간암 등으로 진행될 수 있다.
따라서 아기 때 백신 접종이 가장 중요하다.
엄마가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이거나 환자일 경우 아이를 낳자마자 12시간 안에 예방백신과 면역글로불린을 함께 접종한다. 엄마가 정상이면 생후 2개월 안에 첫 백신을 맞힌다. 추가 접종 여부는 백신에 따라 다르다. 어른은 처음 한번 접종한 뒤 항체가 형성되지 않으면 1, 2차례 추가 접종한다. 그래도 항체가 생기지 않으면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접종 후 항체가 생길 확률이 떨어지므로 20대 이전에 맞는 것이 좋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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