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개평 정치’

  • 입력 2001년 4월 11일 18시 26분


개평은 ‘노름이나 내기 따위에서 남이 가지게 된 몫에서 조금 얻어 가지는 공것’을 뜻하는 우리말인데 그 어원을 살펴보면 이렇다. ‘평’은 조선 중기인 1633년(인조 11년)부터 조선말엽까지 쓰이던 엽전, 즉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줄여 부르던 말로서 이 앞에 낱개의 뜻을 지닌 ‘개’가 붙어 ‘낱돈을 준다’는 의미가 된 것이다. ‘개평꾼’은 개평을 뜯는 사람이고, 노름에서 돈을 딴 사람이 사는 술을 ‘개평술’이라고 한다. 아무튼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개평’이란 우리말이 ‘개평 정치’로 둔갑해 나타났으니 귀가 솔깃할 만하다.

▷이부영(李富榮)한나라당의원은 엊그제 충남대 행정대학원 강연에서 김종필(金鍾泌)자민련명예총재를 이렇게 비난했다. “강력하게 표출된 김영삼씨의 영남지역할거주의, 김대중씨의 호남지역할거주의에 편승하여 자신이 충청지역의 맹주가 된 대가로, 충청지역민들을 동서 지역할거주의의 들러리로 전락시킨 주인공이 바로 김씨다. 집권을 위해 분열과 대립을 조장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씨 사이에서 김종필씨는 이른바 지역 민심을 내세워 실속을 챙기는 ‘개평 정치’를 계속해온 셈이다.”

▷한마디로 김씨는 ‘개평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니 자민련이 어찌 못들은 척하겠는가. 하여 서둘러 논평을 하였는 즉 그 요지는 “JP는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기치 아래 이 나라의 산업화를 이룩했다. 이부영의원 당신은 조국근대화 과정에서 삽질 한번이라도 했는가”다. ‘구상유취(口尙乳臭·입에서 아직 젖내가 남)한 자의 비열한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기야 요즘 JP가 좀 잘 나가는가. DJP공조를 내세워 수하(手下)에 넉넉하게 장관자리도 마련해주고, 다음 대선의 ‘킹 메이커’도 따 놓은 당상일진대 개평꾼이라니, 이런 고얀! 할 만도 하겠다. 하나 JP가 근대화에 삽질은 했다고 할지언정 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없다면 논평의 제목을 ‘이부영의원의 반민주적 작태’라고 붙인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어쨌든 서산을 아무리 벌겋게 물들인다 한들 해는 지기 마련이니 새 아침의 정치를 기다려 볼밖에.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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