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對日 침묵 깨고 '포문'…'日교과서 큰 불만' 발언

  • 입력 2001년 4월 11일 18시 29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1일 처음으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 것은 향후 정부의 대응 방향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대통령은 ‘한국 국민의 큰 불만’을 전하면서 “교과서 채택과정이나 새로운 수정과정을 통해서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불가 방침을 밝힌 ‘재수정’을 우리 정부는 요구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김대통령은 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당사자이고 이같은 한일관계의 질적 발전이 노벨평화상 수상 이유 중 하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발언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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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의 언급 배경〓김대통령이 강한 유감을 표명한 1차적 이유는 국내의 비판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초 정부는 김대통령이 직접 유감 표명을 해야할지 여부를 둘러싸고 청와대 비서진들간에도 의견이 엇갈릴 정도로 고민했다는 후문이다.

박준영(朴晙瑩)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을 비롯한 상당수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까지도 “교과서 문제는 외교부에서 전담할 사안”이라고만 말해 왔다. 김대통령이 그동안 줄곧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강조해 왔고, 실제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해 온 만큼 교과서 문제에 직접 개입하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다고 보았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이 유감 표명을 한 것은 ‘교과서 문제와 관련한 여론 악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부 대응의 방향〓김대통령의 유감 표명이 일본측에 일으킬 반향의 정도에 따라서 정부의 대응 정책 수위도 조절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사태의 해결이 어려운 것은 ‘왜곡내용의 재수정’이라는 우리의 궁극적 요구사항을 일본측이 수용할 여지가 그 어느 때보다 좁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즉 4월26일 새 내각이 출범하는 등 일본 국내 정세가 어수선한데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 일본 정부도 국내 여론의 눈치를 봐야 할 상황이라는 것. 특히 일본 정부가 국내외적으로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다원주의 사회에서 역사관까지 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재수정은 없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부담이다.

양국 정부가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의 형국인 셈. 정부로서는 다양한 외교적 카드를 검토하고 있지만 그것이 ‘교과서 재수정’이란 핵심목적의 달성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데다 불필요한 확전(擴戰)을 불러올 우려가 있어 대응 전략 수립에 고심하고 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김대통령 日교과서관련 발언 전문▼

역사인식 문제는 과거 문제지만 양국 국민간 관계를 결정하는 근본 문제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98년 일본 방문시 일본 정부는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과거사에 대해 사죄했고 젊은 세대의 역사 인식을 심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역사교과서 검정은 이같은 공동선언의 정신에 비춰 매우 미흡해 한국 국민들이 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문제점을 제기할 예정이다. 교과서 채택 과정이나 새로운 수정 과정을 통해서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란다. 일본의 양식있는 여러 분들이 노력해서 한일 양국 국민간의 친선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결되기를 바란다. 아시아 국가와 일본은 서로 좋은 관계를 맺고 상호 신뢰하고 존경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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