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F(금양퓨전스) 유럽’ 이성민사장(38)은 98년 5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 ‘인생의 배수진’을 쳤다. 그로부터 3년이 안돼 올해 매출액 1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서울대 경영대와 경영대학원 졸업, 은행 부설 경제연구소 근무 경력의 엘리트 금융인이었던 그는 97년말 주식에 손을 댔다가 환란을 맞았다. 3억여원의 빚과 불어나는 이자 때문에 집까지 팔고 빈털터리가 됐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금양 정현철 사장은 “유럽 판매 법인을 런던에 세워 맡아 달라”며 자금을 대주었다. 다시 시작해보자는 오기가 솟았다.
“이름만 사장이지 세일즈맨이자 애프터서비스맨이었지요.”
대당 3만달러의 업소용 게임기 ‘퓨전스 시뮬레이터’를 팔았고 늦은 밤, 새벽을 가리지 않고 수리요청이 오면 달려갔다. 책으로 게임기 기판 원리를 배워가며 수리를 했다. 휴대전화로 한국의 전문가에게 물어가며 고치기도 했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손톱에 낀 때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영어 때문에 혼났습니다. 판매 상담을 앞둔 날 밤이면 사전을 뒤져가며 다음날 할 이야기와 농담까지 몽땅 외웠습니다.”
힘겹게 지내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지난해 초 이탈리아의 한 게임기 전시회에서 게임기업체 ‘세가’의 부사장을 지냈던 데이비드 스미스(59)를 만난 것. 업계에서 은퇴한 그는 한국 ‘386 세대의 패기’를 높이 사 판매 고문을 맡아주었다. 그로부터 유럽 게임시장의 인맥을 소개받으면서 일이 잘 풀려나갔다. ‘한국의 무명업체’라는 핸디캡이 사라진 것.
요즘 영국은 물론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게임기 주문이 늘고 있다. 하반기에는 새로운 제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영국 해외투자청의 한국 담당관 매튜 스미스는 “다인종 국제 도시인 런던 등지의 개방된 사업 여건 탓도 있지만 이씨의 성공사례는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런던〓권기태기자>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