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만에 관객 200만을 돌파, 1999년 ‘쉬리’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기록을 갈아치웠고 14일경엔 최단시간 서울 관객 100만명 신기록을 만들어낼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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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성석제 "건달 친구도 그냥 친구일 뿐" |
실제 친구 이야기로 이같은 대박을 터뜨린 곽경택(郭暻澤·35)감독은 “이 정도로 터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영화 속 자신의 역할을 맡은 배우 서태화처럼 곽감독은 사람좋은 얼굴에 웃음이 많은 성격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짜리 딸이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감독 딸과 친구다. 같은 아파트 사니까.
작년에 박감독 딸이 자랑스러워하는 걸 본 우리 딸이 아빠는 언제 저렇게 되느냐며 억수로 부러워했다.
영화가 성공하니까 내가 기쁜 것 보다…딸이 신나서 어쩔줄 모르고 주변에서 반가워해주는 걸 보는 게 더 좋다.”》
“나는 니가 한번 올 줄 알았다. 딸내미들 말고 내 보러…”(준석)
“…미안하다.”(상택)
“아이다. 친구끼리 미안한기 어데있노.”(준석)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다. 미국영화 ‘러브스토리’는 “Love means never say sorry(사랑하는 사람끼리 미안하다는 말은 안하는 것)”라고 했지만 한국서는 친구사이가 바로 그렇다. 위기의 순간, 친구는 수호천사처럼 지구 끝에서라도 달려와 날 구해줄 터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친구들 말고 곽감독에게는 그런 친구가 또 한명 있었다.
97년 데뷔작 ‘억수탕’이 망하고 99년 1월에 개봉한 ‘닥터K’도 실패했다. 본인은 괜찮고 싶은데 남들이 더 민망해하는 통에 바깥출입이 곤란할 지경이었다. 그 즈음 친구 하나가 “다음 영화는 뭐할거냐”고 물었다. “글쎄, 또 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형이 술먹으면서 하던 얘기 중에 친구 얘기가 제일 재미있으니 그걸 해보라”고 했다.
“그런 얘기를 누가 사겠느냐고 고개를 저었더니 형은 그게 문제라고 날 나무랐다. 왜 자기 이야기를 사람들이 사줄까 안사줄까 고민하느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만들어내는게 연출자 아니냐고.”
그 말 듣고 두달간 ‘부산 친구들’을 취재한 뒤 유배가는 심정으로 강원도 두메산골에 들어갔다. 한달만에 초고를 썼다. ‘친구’의 산파역할을 한 그 친구가 영화끝 자막 ‘도움주신 분들’에서 맨 앞에 나오는 이창준 프로듀서다.
“영화 두번 실패하고 나서 그만둘까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데 안할 때 안하더라도 내가 더이상 최선을 다할 수 없을 때까지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지금까지는 관객의 반응을 먼저 생각한 게 사실이다. 이제는 내가 미칠 수 있는 얘기를 굉장히 열심히 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 * *
“준석아. 니 와 그랬노.”(상택)
“쪽팔리서. 건달이 쪽팔리믄 안될거 아이가.”(준석)
영화는 ‘싸나이’들의 정서를 기막히게 담아낸다. 하물며 건달도 쪽팔리는 걸 싫어하는데, 쪽팔리는 짓을 해놓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이들에게 영화는 매운 따귀를 한대 올려붙인다.
“국회의원들을 모셔놓고 시사회를 한 적이 있다. 영화 끝부분에서 한 의원이 손수건에다 눈물을 찍어내더라. 아, 저런 양반에게도 이 영화가 통하나 싶어 반쯤 신기했고 반쯤은 고마웠다.”
곽감독은 한국에서 성인남자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힘’에 대한 동경은 하늘을 찌르는데, 자신이 하고싶은 것과 해야하는 일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의미에서다. 준석은 “어느 조직이건간에 지 하고싶은 짓 다하고 살믄 클 수가 없는기라. 갤국에 도태되고 마는기라”는 말로 생존의 법칙을 말하지 않던가(그러나 ‘조직’출신이라는 한 네티즌은 ‘친구’홈페이지에 “실제 조직원들은 영화처럼 멋있지 않다”고 경종을 울렸다).
게다가 영화는 영남지방의 감정을 묘하게 결집시키는 구석이 있다. 곽감독도 “부산남자들이 쪽팔린다는 걸 제일 못견뎌한다”고 했다. “이 영화가 내년까지 간다면 대선에 영향을 미칠거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짐짓 말해보았더니 감독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도올 김용옥이 ‘TV논어’에서 북방문화권의 말(馬)문화와 남방문화권의 배(船)문화가 절묘하게 만나는 곳이 부산이라고 지적했다. 말은 수직적이고 가고자하는 목표로 정확하게 달려간다. 이에 비해 배는 수평적이고 부유하는 특성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준석의 캐릭터는 ‘말’이고, 갈등이 많은 동수는 ‘배’더라. 영화는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생명력도 지니는 모양이다.”
* * *
“아부지 뭐하시노?”(교사)
“장의삽니더.”(동수)
“장의사? 그래 이놈아. 느그 아부지는 죽은 사람 염해가메 오만 고생을 다하는데 니는 공부를 이 꼬라지로 하나?”(교사)
영화에서 건달의 아들 준석은 건달이 되고, 장의사의 아들인 동수는 또 그것이 부끄러워 건달이 된다. 아버지가 의사인 곽감독은 의과대학 본과 1학년까지 다녔다. 피난민 출신의 아버지는 “전쟁이 나도 의사는 필요하니까 안죽인다. 안정적으로 살려면 의사가 돼야 한다”고 했었다. “본과 올라가니까 거의 매일 시험을 보는데 죽을 노릇이었다. 나중에 어떤 부귀영화를 누릴지 모르겠지만 이거는 못하겠다 싶어서 학교를 그만뒀다.”
영화감독이 될 생각은 없었다. 광고가 멋있어 보여 CF제작 공부를 하러 미국에 갔는데 알고보니 ‘CF과’라는 게 없지 뭔가. 풀죽어있는 그에게 어학 코스 강사가 “영화를 공부하면 CF제작에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을 해줬다.
곽감독에게 영화란 ‘내 목소리’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어하는 이야기꾼이라고 곽감독은 스스로를 정의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진짜 이야기꾼은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했다.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 내 머리속에 그대로 이미지가 떠오를 정도였다. 알고보니 어렸을 때 동네친구들 모아놓고 대본 써주면서 연극놀이를 하고 놀았다더라. 영화공부대신 빵굽는 기술이나 배워오라던 아버지였으나 결국은 ‘나 때는 먹고 살려고 직업을 가졌지만 너 때는 다르다. 하고싶은 거 해라’고 지원을 해주었다.”
귀국 후 95년 ‘영창이야기’로 서울단편영화제 우수상을 받았을 때 ‘경축! 곽경택군’이라고 박힌 타월을 동네에 돌렸던 아버지다. 영화에서 두번이나 실패했을 때도 아버지는 말했다. “나는 너한테 베팅하는 거, 크게 하고 싶다. 너하고 정서방(‘해피엔드’의 정지우감독. 그는 곽감독의 매제다) 하고싶은 얘기를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지원은 해주마. 대신 나쁜 영화는 만들지 마라.”
* * *
“상택아! 니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하고 바다거북이하고 헤엄치기 시합하믄 누가 이기겠노?”(중호)
“조오련.”(상택)
“아이다. 거북이가 물속에서는 얼마나 빠른데. 거북이가 이긴다.”(준석)
조오련과 바다거북이의 시합 얘기는 영화 속에서 세번이나 나온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호기심천국’이니,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표현이니, 관객마다 해석도 다양하다. 곽감독은 웃음기를 거두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시합 안해도 되는 사람을 자꾸 시합시키는 게 있다. 학교다닐 때 학생 둘을 세워놓고 서로 때리라고 벌주는 교사가 있지 않나. 처음엔 장난처럼 슬슬 때리던 아이들도 점점 독이 올라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서로 패게 된다. 세상은 말이 되든 안되든 서로 시합을 시키려 든다. 경쟁에선 이겨야되고, 남을 밟고 올라서야 되고….”
‘친구’에서 그는 연출료 3500만원, 시나리오료 1500만원, 합해서 5000만원을 받는다. 대박이 터지고 보니 “아이고, 아깝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이 슬그머니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황급히 고개를 젓는다. 화장실 가기 전과 갔다 온 후의 마음이 달라서는 안된다고. 영화를 하고싶어 죽겠을 때 선뜻 받아준 제작자가 얼마나 고마웠느냐고.
다음 작품으로 ‘링에서 만큼이나 생을 열심히 살아간 권투선수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며 곽감독은 말했다.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나를 포함하여 같이 영화작업을 했던 사람들이 초심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그때 마음 말이다.”
▽곽경택
▼1966년 부산 출생
▼1985년 부산고 졸업
▼1989년 부산 고신대의대 본과1년 중퇴
▼1991년 도미
▼1995년 미국 뉴욕유니버시티 영화과 졸업
▼1995년 단편 ‘영창이야기’서울단편영화제
우수상 수상.
▼1997년 ‘억수탕’연출. 관객 3만명.
부산국제영화제 공식초청. 브라질
상파울로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1999년 ‘닥터K’연출. 관객 16만명.
브뤼셀 국제영화제 공식초청.
캐나다 뱅쿠버영화제 공식초청.
▽만난사람=김순덕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