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린 체구에 나긋나긋한 말투, 부드러운 외모. 어디에도 그녀가 1년에 수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억척스러운’ 사업가임을 짐작케 하는 구석은 없었다.
도우미 에이전시 ‘베스트컴’을 운영하는 금혜란씨(30). 금씨는 ‘사장’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꼭 필요하다면 ‘도우미 에이전트’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도우미 에이전트란 행사장이나 모델하우스에서 고객들을 맞는 도우미를 공급하는 직업.
지난해 ‘롯데 캐슬’, ‘두산 제니스’, ‘삼성 로얄팰리스’ 등 굵직한 분양 프로젝트를 도맡아 매출 3억원을 기록했다. 화제의 분당신도시 주상복합아파트 ‘파크뷰’도 금씨의 손을 거쳐간 작품.
금씨가 이 길로 들어선 것은 대학 2학년 때인 92년.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했다가 94년에는 부모님께 창업자금 1000만원을 빌려 회사를 차렸다. 2, 3년간 도우미생활을 하면서 알아둔 친구들을 하나 둘 불러모았다. 대학 게시판에 모집공고를 붙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형성한 도우미 네트워크가 약 1000명. ‘직할부대’격인 정예멤버도 100명을 헤아린다. 업계에서는 소문난 마당발로 통한다.
“비결요? 친언니처럼 도우미들을 대하기 때문 아닐까요?”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전하는 금씨의 성공비결은 철저한 ‘사람관리’. 한 번이라도 함께 일한 도우미는 잊는 법이 없다. 특성과 적성을 컴퓨터에 입력해놓는다.
건설업체들이 도우미를 보내달라고 의뢰하면 입력해둔 정보를 들여다보며 ‘인선’을 마친 뒤 사전 교육작업에 들어간다. 예절교육부터 최종 리허설까지 금씨의 OK사인이 떨어지지 않으면 도우미들은 며칠씩 밤샘도 각오해야 한다. 교육에만 최소한 1주일을 투자한다.
“적어도 분양을 돕는 동안에는 ‘나는 이 건설회사 직원이다’라고 생각하도록 가르쳐요. 고객들의 질문에 하나라도 대답할 수 없다면 ‘프로’가 아니죠.”
도우미를 쓰는 건설업체도 많이 달라졌단다. “옛날에는 얼굴 예쁘고 늘씬하면 무사통과였지만 이젠 지성까지 겸비한 도우미를 선호해요. 까다로운 회사는 몇 차례나 직접 도우미 면접을 합니다.”모델하우스를 찾은 중년 고객들이 “며느리 삼고 싶다”며 연락처를 물어갈 때면 분양성공을 직감한다. 이 분야에서 성공의 관건인 가족 같은 편안함과 친절함을 충분히 느꼈다는 얘기이기 때문.
아파트라면 누구보다도 많이 봤다고 자부하는 금씨가 소개하는 ‘좋은 아파트 고르는 법’ 몇 가지.
입지여건과 시공회사는 기본이다. 산과 강이 가까워 이른바 ‘조망권’이 좋고, 아파트를 짓는 회사도 중간에 부도나는 일이 없도록 재무구조가 탄탄해야 한다는 것. 전용률(분양면적에 대한 전용면적 비율)도 이젠 웬만하면 다 챙긴다. 같은 값이면 전용률이 높아야 배타적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
요새는 전용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발코니, 다용도실 등 서비스면적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아파트의 품질을 좌우하는 요소란다.
5월에 오랫동안 사귀어 온 남자와 결혼하는 금씨. ‘아파트 박사’에 어엿한 사장이지만 신혼살림은 서울 반포동 전셋집이다.
“남편될 사람이 아직 군대를 안갔거든요. 제대한 뒤에 살 멋진 아파트를 지금부터 천천히 골라볼 거예요.”물론 결혼하고서도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그저 일이 좋아서, 사람 만나는 게 좋아서 하는 거죠. 도우미 업계의 ‘큰언니’에서 ‘대모(代母)’가 될 때까지 열심히 일할 겁니다.”
<정경준·김수경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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