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거장의 예술혼에 깃들인 性충동

  • 입력 2001년 4월 12일 18시 47분


성적 충동은 피카소의 작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성행위가 다양하게 표현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실제로 본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 ‘피카소 에로티크’가 이 금기의 막을 걷어올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단순히 노골적인 그림들을 보여주는 흥밋거리가 아니다. 이번 전시회는 피카소의 삶과 상상력에 섹스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신선한 시각을 제공해준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에는 피카소가 소년기에 느꼈던 성에 대한 호기심에서부터 중년의 억제되지 않은 열정과 노년의 관음성향까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파리의 제드폼에서 5월 10일까지 열리는 ‘피카소 에로티크’에는 모두 330점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드로잉과 판화는 대부분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피카소에게 있어 섹스는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예술은 정숙하지 않다…. 정숙한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피카소 에로티크’에서 가장 먼저 걸려 있는 작품은 교미를 하는 당나귀를 그린 드로잉이다. 피카소가 겨우 13세 때 그린 이 작품은 그가 소년기에 섹스에 대해 갖고 있던 관심을 보여준다.

피카소는 16세 때 매음굴에서 첫 성경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1899년부터 1907년 사이에 바르셀로나와 파리의 매음굴을 그린 드로잉들은 그가 이 시기에 여성의 몸을 발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자기가 그림 속 행위들에 참가하지 않았던 척 가장하지도 않는다. ‘누드가 있는 자화상’(1902)에는 피카소 자신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유화 ‘에로틱한 장면’(1903)은 어쩌면 10대의 피카소일 수도 있는 젊은이를 상대로 벌거벗은 여인이 오럴섹스를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대해서는 피카소의 초창기 작품 카탈로그를 집필한 피에르 덱스가 어쩌면 진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그는 1960년대에 이 작품과 관련해서 피카소로부터 직접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건 내 것이 아냐. 난 더 못 그렸어. 이 그림은 친구가 장난친 거야.”

세월이 흐른 후에도 섹스에 대한 피카소의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림 속 그의 모습이 성행위에 직접 참가하는 사람에서 남의 성행위를 엿보는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피카소는 “나이가 들면 담배를 끊게 되지만 담배에 대한 욕망은 남는다. 사랑의 행위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그것을 할 수는 없지만 욕망은 남는다”고 말했다.

어쩌면 피카소의 에로틱한 그림들을 포르노와 구분해주는 열쇠가 바로 욕망이라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파리 피카소 미술관의 제라르 레니에 관장은 “육욕은 그의 존재의 핵심이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뭔가 신성하고 위험하고 금기시되는 것, 창조의 신비 그 자체와 접촉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2001/03/22/arts/22ARTS.html)

<연국희기자>ykook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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