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약 16개월 후인 이달 11일. 해태제과는 끝내 법정관리행을 선택했다. 여전히 해태제과의 매각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채권단은 8000억원이 넘는 ‘출자전환’의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채권금융기관들이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온 출자전환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 쌍용양회 쌍용건설 등에 예정된 4조7300억원의 출자전환에 대한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쌍용정보통신 매각 협상 결렬 등 기업들의 매각작업도 차질을 빚고 있어 기업구조조정이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16일 기업구조조정회사(CRV) 설립추진위원회에 따르면 98년 이후 대우 12개 계열사를 제외한 94개 워크아웃기업의 출자전환 규모는 모두 10조1329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끝내 재무구조가 더 악화돼 청산이나 법정관리 절차를 밟는 기업에 실시된 출자전환만 2조원에 육박한다. 결과로 드러난 출자전환 실패율이 20%에 이르는 것. 동아건설 우방 한국부동산신탁 등 지난해 하반기부터 쓰러진 기업들이 모두 대규모 출자전환을 실시한 기업이다.
원인은 채권단의 판단 착오와 사후 관리 미흡, 충분치 못한 출자전환 규모로 모아진다.
CRV 설립추진위원회 이성규 사무국장은 “출자전환은 기업을 살리기 위한 것인데 은행들이 손실이 당장 장부에 반영되는 것을 두려워해 충분한 규모의 출자전환을 애초에 실시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채권단이 워크아웃 중단을 검토중인 진도가 채권단이 판단 미스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진도의 경우 3673억원의 출자전환을 실시한 후 매각 가능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채권단이 ‘혹시나 매각되면 일부는 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질질 끌고 왔다. 결과는 ‘사갈 곳이 없다’는 것. 주채권은행 고위관계자는 “기업을 끌고 갈수록 청산가치가 낮아져 채권단이 회수할 금액만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해태제과의 경우에도 회생프로그램을 짤 때 예상하지 못했던 건설사업부문의 부실이 늘어난 것이 법정관리행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신광식 연구위원은 “출자전환을 통해 경영권을 장악해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 출자전환의 장점인데 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라며 “동아건설이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자산 및 기업매각작업도 최근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 쌍용정보통신의 매각협상이 결렬된 데 이어 지난해 11월 매각을 추진하기로 했던 신동방 등 워크아웃기업들의 매각도 6개월 가까이 되도록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현대건설의 계동사옥 매각도 당초 인수 의사를 밝힌 스타크사와의 가격협상에 실패해 새 원매자를 찾고 있다.
이와 관련해 CRV 설립추진위원회 이성규 사무국장은 “외국기업들이 헐값에 사들이려고 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시한에 쫓겨 대상 기업을 내다 팔 수는 없다보니 매각협상이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 원매자들이 ‘우리나라 기업의 회계장부는 못 믿겠다’며 아예 분식회계를 반영해 가격을 산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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