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관심사로 등장한 영어교육 문제에 대해 의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영어교육은 필수적이긴 하지만 맹목적인 과도한 투자는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정보의 교환이 대부분 영어로 이뤄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영어 능력 보유자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전략과 정책적인 지원도 절실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서 확산되고 있는 맹목적이고 무차별적인 영어교육은 여기에 쏟아 붓는 엄청난 시간적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영어에 대한 갈증을 전혀 해소해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정의 행복마저 앗아가고 있다. 잘못된 영어 열풍의 여파로 자녀의 조기유학을 위해 나라를 떠나거나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포기하고 부부와 부모 자식이 별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나는 한국의 영어교육의 실패 원인이 무차별, 맹목적, 비전문적인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우리의 영어교육은 개개인의 연령 적성 흥미를 고려치 않고 무차별적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교육이 지향하는 목표도 매우 모호해서 모든 사람이 막연히 영어를 모국어처럼 말할 수 있기를 바랄 뿐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 대학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영어교육도 토익과 토플 외에 전문적인 영어교육을 찾아보기 힘들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덤으로 있어도 좋은 정도의 장신구가 아니라 일종의 특수 기능이다.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식민지도 아닌 독립국가인 한국에서 모든 국민이 맹목적으로 영어를 모국어처럼 할 수 있기를 꿈꾸고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일종의 집단적인 정신병과도 같은 것이다.
정부는 이런 국민적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앞장설 의무가 있다. 지금까지의 잘못된 영어교육 정책이 국민에게 무차별적인 영어교육의 부담을 가중시켜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어교육은 좀 더 차별화, 전문화돼야 한다. 교양 수준의 영어는 중고교 6년간의 교육으로 충분하다. 그 외에 전문분야에서 필요한 영어 능력자를 양성해야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수의 특수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을 세워야 한다. 대학에서도 영어영문학의 범위를 벗어나야 한다. 무역영어학과, 법률영어학과 등 특수분야 영어학과들을 신설해 전문성을 겸비한 영어 능력 보유자를 양성해야 한다.
영어 교육이 모든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강요돼서는 안 된다.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서는 한국어만 잘 해도 마음 편히, 그리고 불편 없이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김미경(대덕대 교수·영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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