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기억과 시간에 관한 몽타주<히로시마 내 사랑>

  • 입력 2001년 4월 17일 18시 14분


누벨바그 영화 운동의 불씨는 정확히 1959년 프랑스에서 점화됐다.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프랑소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에릭 로메르의 <사자자리>,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 루이 말의 <연인들>. 그리고 '새로운 영화'의 전령사인 누벨바그 작가들조차 놀라게 했던 현대영화(Modern Cinema)의 시작 <히로시마 내 사랑>은 모두 59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영화들이다.

이 중 <히로시마 내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뒤흔들고, 침묵으로 강렬한 구호를 외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영화보다도 새로웠다. 작가 앙드레 말로가 "결코 보지 못했던 최고의 작품"이라 극찬한 <히로시마 내 사랑>은 알랭 레네 감독의 초기작이다.

대부분의 누벨바그 감독들이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위원 출신이었던 데 반해 알랭 레네 감독은 유랑극단의 카메라맨에서 편집기사로, 다시 감독으로 꾸준히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40여 년을 돌아 국내 극장가에 당도한 <히로시마 내 사랑>은 제목처럼 달콤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히로시마에서 만난 두 남녀의 슬픈 사랑을 담고 있으면서도 멜로 영화의 외피에선 한참 멀어져 있다.

"난 모든 걸 보았어요." 세계 최초로 원폭 피해를 당한 도시 히로시마에서, 한 여자는 그들의 아픔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는 듯이 속삭인다. 그러자 남자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는다. "아니, 당신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어." 과연 그녀가 본 것은 무엇이고 그가 보지 못했다고 단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수수께끼처럼 시작된다. 원자폭탄의 잿더미를 뒤집어 쓴 듯 울퉁불퉁한 살갗을 지닌 두 남녀가 뒤엉켜 있는 첫 시퀀스에서부터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다. 세계 평화에 관한 영화 촬영을 위해 히로시마에 온 여배우(엠마누엘 리바)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본인 건축가(에이지 오카다). 그/그녀로만 지칭되는 두 사람은 뜻모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고 사랑하면서도 줄곧 헤어짐을 생각한다.

히로시마의 아픔을 동시에 느끼는 그들은 과연 어떤 과거를 가졌기에 그리도 슬퍼 보이는 걸까. 알랭 레네 감독은 두 사람의 공간을 프랑스의 느베르와 일본의 히로시마로 각각 상정한다. 오래 전 그녀는 고향 느베르에서 독일군 병사와 사랑에 빠졌지만 해방군에게 연인을 잃고 정신병원에 감금됐던 기억이 있다. 그녀가 생의 비참한 기억에 함몰되어 있던 순간, 그는 지구 반대편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사건'이 일어난 날은 모두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던 바로 그날이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두 사람의 공간적 거리는 급격히 가까워진다. 공간이 좁혀지고 현재의 시간은 과거와 혼합된다. 과거의 아픔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랭 레네 감독은 <히로시마 내 사랑>을 통해 완벽히 재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두 남녀의 대화와 지난 시절의 아픔을 더듬는 다큐멘터리적 화면은 전쟁에 희생당한 개인의 아픔을 철저히 되새겨준다.

영화의 마지막,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비로소 확인한다. "당신의 이름은 히로시마, 난 느베르." 두 공간을 대변하는 그들은 인류의 가장 비참한 시간을 압축해 놓은 하나의 상징처럼 보인다.

누보로망의 대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을 영화화 한 <히로시마 내 사랑>은 아무 것도 얘기하지 않을 것같은 표정으로 강렬한 정치적 구호와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선사하는 영화. 만들어진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히로시마 내 사랑>은 여전히 '새롭다'.

원제 Hiroshima mon Amour/감독 알랭 레네/원작 마르그리트 뒤라스/주연 엠마누엘 리바, 에이지 오카다/러닝타임 91분/개봉일 4월23일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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