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금난에도 도움안돼▼
앞으로 물가상승률과 세금을 빼고 나면 실질이자율은 마이너스(-)가 될 전망이다. 은행에 돈을 맡겨도 이자를 버는 것이 아니라 원금을 서서히 까먹는 셈이 되는 것이다. 퇴직자나 고령의 이자소득 생활자들에게는 더 할 수 없이 비정한 세월이 됐다.
금리가 떨어진다고 해서 기업의 자금조달이 유리해진 것도 아니다. 은행들은 신용상태가 불확실한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몰려드는 예금을 받아서 안전한 국공채에 투자하기 때문에 이자가 떨어지고 있다. 기업에는 이자가 싼 은행돈이 그림의 떡 인 셈이다. 주가는 떨어지고 실질예금이자도 마이너스가 돼 전반적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투자는 줄어들었다.
국제적으로 볼 때 미국금리도 하락세이며 일본금리는 제로 금리라고 할 만큼 초저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일본은 물가가 떨어지고 있어서 실질금리는 별로 내려가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이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은행예금에 대해서는 높은 세율을 부과하고 대출기업에는 조세를 감면해주는 등 획기적인 조치로 유동성 함정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은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 인플레이션을 조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예금금리는 떨어지는데 물가는 빠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실질금리가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자 몇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사치성 소비재 수입이 급격히 늘고 있다. 소비가 전반적으로 늘어 기업의 생산과 투자로 연결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일부계층의 사치성 소비가 수입증가를 초래하는 현상은 경제를 더욱 불안정하게 할 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내의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자본의 해외도피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국세청은 작년에 변칙적인 외환거래를 통한 외화도피액이 92억 달러나 된다고 추정한다. 외환보유액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올해부터는 2단계 외환거래 자유화 조치가 시행되고 있어 자본이동은 더욱 신속하고 용이하게 됐다.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요인이 많은 가운데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금리까지 마이너스가 되면 자본의 해외도피를 막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마이너스 실질금리를 시정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물가안정이다. 99년 이후 안정세를 보이던 국내물가는 작년 하반기부터 빠른 오름세로 돌아서 올해 2·4분기에는 5%대에 육박할 전망이다. 저금리 정책으로 일관해온 통화신용정책도 재고돼야 한다. 한국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계속된 금융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신축적인 통화공급을 계속해왔다. 최근에는 총통화(M2) 관리를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다. 과거에 평균 17% 수준이던 총통화 증가율은 최근 30%선에 이르렀다. 오로지 저금리를 유지하고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는데 통화관리의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늘어난 통화 탓 인플레 압력▼
지속적으로 확대돼온 통화 발행은 앞으로 인플레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여기에 최근 일본 엔화 가치 하락에 따른 원화의 평가절하 추세, 공공요금 인상, 국제원유가 불안 등 물가상승 요인이 산적해 있다. 따라서 그동안 소홀히 해온 물가안정과 통화관리가 다시 시급하고 중요한 정책과제로 대두됐다. 정부는 그동안 우리 경제를 비교적 낙관해온 것으로 보인다. 99년 이후 외환위기도 벗어났고 구조조정도 성공적으로 추진해서 경제의 기초여건이 크게 개선됐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미국 일본의 경기침체와 국내 금융시장 불안, 구조조정 지연 등으로 국내경제는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작년 4·4분기부터 정부는 제한적인 경기부양책을 실시하고 있다. 문제는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가운데 어떻게 경기부양과 인플레 억제를 동시에 실시하느냐는 것이다.
이재웅(성균관대 부총장·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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