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박찬호 커브' 1초에 30번 회전

  • 입력 2001년 4월 18일 18시 34분


커브볼, 스크루볼, 포크볼 (왼쪽부터)
커브볼, 스크루볼, 포크볼 (왼쪽부터)
흔히 야구를 기록경기라고 한다. 야구팬들은 유명 타자의 타율 하나하나를 외우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타자라 하더라도 투수의 공을 쳐낸 것이 10번 가운데 서너 번밖에 안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투수가 던지는 공의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이다. 시속 150㎞의 공이 투수판을 떠나 홈까지 18.4m를 날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0.44초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눈감짝할 사이다. 그래서 타자들은 평소의 훈련을 통해 본능적으로 타격을 한다.

게다가 보통 메이저리그 투수의 빠른 공은 1분당 1800번의 엄청난 회전력을 가지고 있어 자유자재로 방향이 바뀐다.

커브볼이 방향을 휙 트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야구공이 아무런 회전 없이 직구로 날아가면 공 뒤쪽의 압력이 낮아지면서 뒤로 향하는 힘이 작용해 속도가 떨어진다.

그런데 야구공에 회전을 걸어주면 전혀 다른 현상이 벌어진다.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을 걸어주면 공 뒤쪽의 압력이 낮아지는 부분이 오른쪽으로 치우치게 돼 결과적으로 공이 왼쪽으로 휘게 된다. 이 현상은 독일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마그누스가 1852년 실험을 통해 발견한 것으로 ‘마그누스 효과’라 불린다.

투수들은 마그누스효과를 이용해 좌우뿐 아니라 공이 떨어지는 지점도 바꿀 수 있다. 위에서 아래로 회전을 걸어주면 마그누스효과는 지면을 향하게 돼 회전이 없을 때보다 더 일찍 공이 떨어지며 반대로 회전을 걸어주면 좀 더 먼 곳에서 떨어진다.

투수들에 맞서는 타자들의 숙제는 공이 방망이에 부딪혔을 때 가장 멀리 나가는 지점인 ‘스위트 스폿’(sweet spot)을 찾아내는 것이다.

야구공이 방망이에 부딪치면 방망이의 아래위로 여러 개의 진동이 일어난다. 스위트 스폿은 이 진동이 상쇄돼 없어지는 지점이다. 이 지점에서는 방망이의 에너지가 진동에 의해 소모되지 않고 공에 그대로 전달돼 가장 멀리 날아가게 된다.

최근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의 앨런 네이던 교수는 야구공이 방망이에 충돌할 때 발생하는 진동을 수식을 통해 이론적으로 계산해냈다.

그 결과 84㎝ 길이의 방망이에서 스위트 스폿이 이제까지 알려진 것처럼 손잡이에서 68㎝ 지점이 아니라 그보다 위인 72㎝임을 밝혀냈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해 11월 미국 물리학회지에 발표됐다.

네이던 교수는 이론적으로 계산한 결과를 추에 매단 공을 방망이의 각 지점과 충돌시킨 실험결과와 비교했더니 정확히 일치했다고 밝혔다.

야구코치들은 ‘공에 끝까지 힘을 실어라’고 말한다. 타자들에게 진동에 의한 힘의 손실을 막기 위해 타격 시 손을 꽉 쥐고 가능한 방망이가 공과 접촉하는 시간을 길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네이던 교수는 방망이의 운동량이 공에 전달되는 시간이 워낙 짧고 타격 시점에 이미 방망이의 운동량은 최대가 됐기 때문에 공과 방망이가 충돌할 때 손을 꽉 쥐든 살짝 쥐든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손은 방망이의 진동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때는 이미 공이 방망이를 떠난 뒤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야구공 때문이라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대학의 범죄 연구소 데니스 힐라드 소장은 1963년부터 지난해까지 사용된 야구공을 분석한 결과 갈수록 화학섬유의 비율이 높아졌음을 밝혀냈다. 화학섬유는 습기를 잘 흡수하지 않기 때문에 공의 탄성이 그만큼 좋다는 것이다.야구는 이처럼실 하나로도 희비가 엇갈린다. 그래서 야구는 9회 말 2사후부터란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투수와 타자들의 노력도 날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습도가 높으면 공기밀도가 높아져 타구가 멀리가지 않아 투수가 유리하지만, 고지대에선 공기밀도가 낮아 홈런이 많이 나온다. 그만큼 야구에는 변수가 많다. 그래서 야구는 9회말 2사후부터란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영완동아사이언스기자>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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