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세균전을 전개하고 인체실험을 자행한 부대는 1933년 만주에 창설된 관동군 방역급수부(防疫給水部), 즉 731부대이다. 하얼빈 교외의 감옥과 인체실험실에서 죄수나 정치범은 물론이고 애꿎은 농민들까지 ‘기니피그(실험재료)’로 무참히 죽어갔다. 작은 방에 차꼬를 채운 ‘기니피그’에게 처음에는 건강 유지를 위해 좋은 음식을 먹이고 콜레라 비저병 선페스트 등의 병균을 접종했다. 주기적으로 피를 뽑아 연구하다가 몸이 허약해져서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독살했다. 병균말고도 청산가리 독가스 전기충격 등 1000여 가지에 이르는 인체실험이 강행됐다.
초기 성과에 만족한 일본 육군은 1939년 하얼빈 근처의 핑팡(平房)에 비행장을 갖춘 대규모 세균공장을 건설했다. 종전 때까지 핑팡에서 죽어 나간 사람들, 이른바 인간 통나무(마루타)는 중국인 러시아인 조선인 등 3000여명에 이르렀다.
731부대는 개인에 대한 인체실험에 만족하지 않고 병원균의 독성을 야외에서 실험했다. 세균전을 준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대량으로 생산된 세균은 발진티푸스 장티푸스 선페스트 천연두 콜레라 파상풍 이질 성홍열 디프테리아 폐렴 성병 폐결핵 등 거의 모든 질병을 망라하고 있다.
731부대는 세균을 살포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가령 창춘(長春)에서는 사람들에게 콜레라 병균을 교묘하게 접종했다. 난징(南京)의 우물 속에는 갑상선 기능에 이상을 일으키는 세균을 집어넣었다. 닝보(寧波)에서는 하늘에서 밀밭 위로 콜레라와 선페스트 균을 공중 살포했다.
닝보는 상하이(上海) 남쪽에 있는 도시로 저장(浙江)성에 속한다. 올해 1월 도쿄지법에 제소한 사람들이 바로 저장성의 피해자들이다. 증언대에 선 중국 의사들은 2차대전 종전 후 처음으로 일본 군대가 저지른 세균전의 만행을 낱낱이 폭로했다. 1940년 10월 731부대는 전염병의 세균을 지닌 벼룩을 닝보에 퍼뜨렸다. 선페스트가 34일간 창궐해 닝보에서 109명이 죽어나갔다. 같은 달에 저장성의 취저우(衢州)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군용기가 하늘에서 떨어뜨린 종이가방에는 각각 10마리의 벼룩이 넝마와 함께 들어 있었다. 취저우의 생존자인 한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 종이가방에는 선페스트 콜레라 발진티푸스 탄저병의 세균이 들어 있었다.
저장성 당국은 닝보와 취저우에서 세균전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병균으로 감염된 주택과 시설을 소각했다. 그러나 중국 세균학자들은 1948년까지 닝보에서 새로운 전염병이 계속 발생했으며 1953년까지 취저우에서 발진티푸스가 창궐했다고 증언했다. 더욱이 일본의 벼룩 투하 직후 취저우를 탈출한 사람들이 주변 마을에 질병을 옮긴 탓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는 것이다.
일본 법정에서 중국 세균학자들은 역사상 한번도 선페스트를 경험한 적이 없는 취저우에서 일본의 세균 공격으로 5만명이 죽었으며 60년이 지나서도 건강한 사람들 중에 발진티푸스를 앓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증언했다. 특히 벼룩은 저장성에서 볼 수 없는 종이므로 731부대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731부대가 세균전을 시도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전범으로 처벌받지 않고, 과거의 비인간적 만행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생체실험을 통해 얻은 의료기술로 일본 의학계에서 행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한 세균전 부정은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최근 국제문제로 비화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일본은 태평양전쟁 대신 대동아전쟁이라고 부르며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전쟁의 정당화에 광분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려는 그들이 세균전을 인정할 리 만무하다.
중국 정부는 일본 군대가 땅 속에 파묻어 둔 200만 개의 생화학 무기를 찾아내 파괴하고 있다. 중국에서 2차대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니다. 한국에서도 태평양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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