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항에서 줄배를 타고 건너면 속칭‘청호동 아바이 순대’라는 골목이 나온다. 피난민 이주지로서 으레 TV에 이 골목 사람들이 연례행사처럼 소개되곤 한다. ‘함경도 아바이 순대’ 때문이다.
나루터 입구 골목쪽 첫집인 ‘다신회식당’(김종문·033-633-3871)도 예외는 아니다. ‘TV 맛자랑’ 간판도 붙어 있고,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팀도 들렀던지 그 이야기도 지방신문에 곁들여 맛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바이 순대’를 취재하러 갔던 필자로서는 정작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바이 순대’가 아닌 오징어 순대였기 때문이다.
이 집 주인 할머니는 강원도 통천 출신이었다. 이건 ‘아바이 순대’가 아니라 순 강원도식 ‘오징어 순대’가 아니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대답한다. 피난 와서 보니 돼지 창자를 구할 수 없어 강원도에서 흔한 오징어를 써서 순대를 만들어 판 것이 세상에는 그것이 ‘아바이 순대’로 잘못 알려져 그대로 함경도 향토식품인 ‘아바이 순대’로 행세하게 되었다는 전말이다. 실망이 컸다.
그렇지만 여기서 진짜 함흥회냉면을 만나게 된 것은 큰 횡재였다. 말이 함흥냉면이고 평양냉면이지 흔히 만나는 냉면은 ‘아바이 순대’처럼 진짜배기가 그렇게 흔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양냉면은 메밀가루며 물냉면인지라 회가 빠지고, 함흥냉면은 고구마 전분을 쓰되 육수가 따로 나오는 비빔냉면이다. 그러므로 평양냉면은 맵지도 않고 맛이 순후하고 고소하지만, 함흥냉면은 맵고 아주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소화가 잘 되어 편육을 냉면이 나오기 전에 따로 시켜 먹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냉면의 고명으로는 주로 오이를 나박나박 채친 것과 무를 얇게 저민 것을 얹는다. 이는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이 다 엇비슷하다. 다만 편육과 달걀이 오르고 갖은 재료를 첨가하는 양념장이 나오는데, 평양면은 그대로 나오고 함흥면은 고명과 함께 섞어서 얹은 채로 나온다. 입 천장과 혀 끝이 얼얼해 오는 것은 함흥냉면이고, 입 속에서 살살 녹으며 구수하게 젖어오는 것은 평양냉면이다.
진짜 메밀 100%면 쫄깃한 맛이 없을 것임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불량냉면은 보리를 볶아 태워서 빻은 가루를 밀가루에 섞어서 메밀인 것처럼 속이는 경우도 있어 맛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또 95%의 밀가루에 5%의 메밀을 껍질까지 태워서 반죽을 하는 경우도 있다. 메밀이 귀하기 때문이다. 진짜 메밀국수 가락을 손쉽게 먹으려면 ‘꿩 메밀 손칼국수’로 유명한 서귀포의 ‘한라성’(한승희·064-732-9041)에 가면 그 순후하고 구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메밀가루는 찬물이나 미지근한 물에 초보자도 반죽을 할 수 있지만, 고구마 전분은 100℃ 이상 펄펄 끓는 물에서 순간적으로 치대야 하므로 오랜 경험자만이 반죽할 수 있다. 이 일을 되풀이하는 숙수의 손바닥에 앉은 굳은살만 보아도 그 숙수의 경력을 짐작하게 한다.
다신회식당 주인 김종문 할머니의 손바닥도 예외는 아니었다. 피난민으로서 드난살이의 경력이 거기 그렇게 아물어 터져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아바이 순대’가 아닌 오징어 순대보다는 ‘회냉면’을 들면 진짜 함흥냉면을 먹는 맛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는 면장갑을 끼지 않고도 할머니의 손은 고구마 전분을 압축하는 노하우도 있으며, 육수와 양념장 맛이 냉면 맛을 좌우한다는 것도 할머니는 터득하여 노하우로 축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교역이 터지면서 이제는 어디서나 평양냉면을 들 수 있는 기쁨이 배로 커질 것 같다. 메밀은 본디 척박한 땅이 아니면 심지 않는다. 가뭄과 한발에 기근이 들면 구황식의 대용으로 심었던 산간지방의 작물이었다. 남쪽 평야지대에서는 메밀이 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이나 명절에는 청포묵이나 황포묵(녹두물+치잣물)과 함께 메밀묵은 잔칫상의 단골 메뉴였다. 메밀은 고구마 전분에 비해 열성(熱性)이 아닌 냉성(冷性)이므로 칼로리가 적고 섬유질이 많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최상이다.
이제 남북교역이 활발해지면 우리 국토 어디에서나 순함흥냉면과 평양면을 즐겨들 수 있을 것 같다. 맛의 평준화라는 것도 정녕 통일과 함께 오는 것이 아니던가.
[송수권 시인]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