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T가 뭔지 알고 싶다고?

  • 입력 2001년 4월 20일 16시 54분


여자끼리의 사랑. T가 해사한 느낌으로 금기에 도전한다.

정적을 가르는 옅은 바람소리.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움직인다. 눈을 뜨자, 마치 먹물로 글자를 써내려가듯 이마에 서서히 번지는 T. 그 위에 앙증맞은 문양의 차 잎이 살짝 그려진다. 카피는 달랑 한 줄.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고? T. 어엇 엽기적이고 이상한 광고네, T가 과연 뭘까? 궁금증을 유발했던 강렬한 인상의 티저광고는 막을 내리고 본편이 나왔다.

거꾸로 누워 열심히 발차기 운동에 열심인 한 여자. 탄탄한 몸매의 그녀는 2000년 슈퍼엘리트 모델 김희은. 카메라는 누군가의 시선을 따라가듯 문을 들어서고 차츰차츰 확대하며 그녀를 보여준다.

맞은 편 집. 커튼을 살짝 젖히며 운동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또다른 여자. 파란피 모여라, 나우누리 광고의 주인공 정은아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살금살금 비밀스럽게 김희은을 훔쳐보는데...그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운동을 마치고 쉬고 있던 김희은. 언뜻 거울에 비치는 여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고개를 휙 돌린다. 화들짝 놀라며 몸을 숨기는 정은아. '어떡해' 중얼거리는 그녀의 표정은 콩닥거리는 심장소리까지 들릴 것처럼 섬세하다.

'니가 좋아' 음료캔을 살짝 볼에 비비며 내뱉는다. 이 고백은 어쩐지 이중적으로 들린다. 정작 마음에 둔 그녀에게는 고백하지 못하고 애꿎은 음료수에 감정이입을 하는게 아닐까 하고.

이 광고는 봄을 담아낸 수채화처럼 담백하고 깨끗하다. 담쟁이 넝쿨이 자라고 하얀 창틀의 예쁜 집들, 거기다 상큼한 얼굴의 모델.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속은 더없이 은밀하다. 겉으로 보이는 외적인 모습은 청초하지만 내적인 정서는 과감하고 파격적이다.

뭔고 하니 바로 동성애. 앞집 여자를 좋아하는 한 여자. 몰래 훔쳐보고, 혼자 고백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여느 소녀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상대가 여자인 것만 빼면. 애띤 소녀들의 말못할 사랑이지만 어두움보다는 오히려 티없이 맑고 순수하다는 인상이다.

색다른 키워드는 광고에 쓰인 음악. 이상은이 낮게 흥얼거리는 노래는 <봉자>의 주제가 <성녀>다. 성고백으로 논란을 빚었던 봉자의 주인공 서갑숙이 떠오르면 광고는 더욱 농밀해진다. 파격적인 사랑의 주인공들인 셈이다. 그 맑은 음률 속에 어두움까지 감싸 안고 음지의 영역인 동성애를 양지로 화사하게 끌어낸다.

'뭔가 성스러운 일이 일어날거야'라는 가사는 또 어떤가.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둘의 사랑에 성스러운 일이라니. 애잔하지만 덤덤한 '성녀'는 위로를 넘어 마치 축복이라도 내리는 것 같지 않는가..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게 독특한 디자인 마케팅. 디자인의 새바람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tea를 연상시키는 브랜드 명 T는 지극히 심플하고 쉽게 각인된다. 녹차맛은 푸른 빛깔, 홍차맛은 붉은 빛깔이 도는 파스텔 톤 용기에 T(티)와 차 잎만을 부각시킨 제품 패키지는 자신들만의 세련된 감각을 보여준다.

T는 뭐든지 새롭다. 이마에 새겨지는 T도, 한글명 티라고 적힌 제품도. 여자들끼리의 사랑도 새롭고 하얀 톤으로 잡아낸 표현법도 신선하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새로워졌으면.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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