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월드/도쿄산책]"아직도 밤새며 문상 하나요"

  • 입력 2001년 4월 20일 18시 31분


"어제 상가(喪家)에서 밤새워 술을 마시고 목욕탕에 들렀다가 바로 출근하는 길이야. 머리가 띵해서 오늘은 일도 제대로 못할 것 같아. "

한국 성인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문상(問喪)경험이다. 같은 유교문화권이지만 요즘 일본에서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조문을 가서 밤샘을 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문상을 오쓰야(お通夜)라고 한다. 뜻으로 보면 옛날에는 일본에서도 밤을 새워가며 조문을 한 것이 분명하다. 지방에는 아직도 그런 풍속이 남아있다.

그러나 도시지역의 문상은 이미 '간소화' 됐다. 문상은 오후 6시부터 8시까지가 보통이다. 최근에는 더욱 줄어들어 오후 6시부터 7시까지만 문상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점점 바빠지는 세태를 반영한다고나 할까.

절차도 고인의 영정 앞에 만들어 놓은 제단에 향을 올리고 상주들과 인사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곧바로 돌아가도 되고 문상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 문상이 끝나면 상주측은 보통 생선초밥(스시)으로 저녁을 대접한다. 간단한 주류와 음료가 따라 나온다. 그러나 취할 정도로 먹는 사람도 없고, 그럴 만한 시간도 없다. 밥을 먹고도 떠나지 않으면 오히려 실례다. 남는 사람은 유족과 가까운 친척 뿐이다.

회사원 고키타 기요히토씨(小北淸人·39)는 "최근 일본의 문상문화는 문상을 가는 사람은 물론 상주에게도 별 부담이 없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장인이 별세했을 때 문상객이 일찍 돌아간 뒤 가족 몇 명이 번갈아가며 유해를 지켰다"며 "한국처럼 상주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갑자기 문상을 갈 때 필요한 검은 넥타이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지하철 역에 있는 매점에서 대부분 검은 넥타이를 팔고 있기 때문.

부의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회사동료의 상이라면 5000엔이나 1만엔이면 된다. 결혼식 축의금으로 대개 3만엔을 내는데 비하면 싼 편이다. 왜일까. 일본에서는 결혼식때 주로 호텔을 이용하기 때문에 밥값만 1만엔이 넘는다. 그러나 문상절차가 간소해지면서 상가에서는 별로 돈이 들 이유가 없다.

바빠서 문상을 가지 못한 사람은 발인하기 전에 치르는 고별식에 가면 된다. 이때는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내야한다.

일본에서는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 검은 양복에 흰 넥타이를 맨 사람들을 동시에 만날 때가 있다. 검은 넥타이는 문상 쪽이고 흰 넥타이는 결혼식 쪽이다. 간소화가 규격화를 낳은 것이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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