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릉의 파괴도 혁명이다!”
1925년 초여름, 중화민국이 청조의 구질서를 완전히 대체하기 전의 혼란기. 군벌 쑨덴잉(孫殿英)의 무장군인들이 하북성에 위치한 청 동릉(東陵)을 습격했다.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이 잦아들자 건륭제와 서태후의 지하궁이 열렸다. 황제와 비빈(妃嬪)의 관이 깨어지고 해골이 나뒹구는 가운데 온갖 부장품의 약탈이 시작됐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도굴이 시작된 것이다….
‘마왕퇴의 귀부인’ ‘진시황릉’ 등의 책에서 ‘고고학과 문학의 만남’을 주도해온 저자 웨난(岳南)이 이번에는 청 동릉의 전대미문의 수난사를 집중 조명했다. 황권을 탈취한 뒤 선조들의 꾸짖음을 두려워해 동릉에 따로 묻혔던 옹정제 이래 역대 청의 황제는 700리나 따로 떨어진 서릉과 동릉에 번갈아 가며 묻혔다.
그리고 그 절반의 역사를 담은 동릉은 여지없이 깨어져 가슴아픈 중국 현대사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크게 두 축을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한편으로는 청조 말기, 최후의 황제인 푸이가 등극한 후 왕조가 붕괴하면서 전국 각지를 호령한 군벌들의 합종연횡이 펼쳐진다.
일본의 지원 아래 동북 3성을 장악한 장쭤린(張作霖), 정통 장교 출신으로 중원을 장악한 우페이푸(吳佩孚), 수도 북경을 지배하며 중앙 정치를 파괴한 펑위샹(馮玉祥). 이들의 세력대결 속에 독버섯처럼 솟아오르는 인물이 바로 쑨덴잉이었다.
세력이 정립된 중화민국 치하에서도 도굴한 보물을 토대로 뇌물공세를 펼쳐 마침내 자기의 범죄를 지워버리고 마는 그의 행보는 우울한 중국 현대사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책의 다른 한 축은 동릉에 묻힌 역대 중국 황제들의 파란만장한 정권 승계극과 치적. 애첩 동비를 못 잊어 죽음을 가장하고 절에 들어갔다는 순치제의 전설은 ‘부채와 신발만 묻혔을 뿐’이라는 소문과 함께 그의 능을 온전히 보전케 했다.
‘구룡배(九龍杯)’란 강희제가 생전 가장 소중히 여겼고 그와 함께 묻혔다는 술잔 이름. 두 마리의 용과 여의주를 새겨, 가득 술을 따르면 아홉 마리의 용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해진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