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길(金正吉) 법무부장관은 엊그제 국회에서 “일선 검찰이 신속성과 기밀유지를 위해 업무적으로 잠깐만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에서 공무원 임용령에 정한 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공무원 임용령에는 ‘민간기관의 임직원을 파견 받을 경우에는 소속 장관이 해당 민간기관의 장, 행정자치부 장관과의 협의를 거쳐 국무총리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금감원 직원의 검찰 파견은 ‘잠깐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은 장기적이고 상시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금감원의 자료에 따르면 파견 기간이 길게는 1년, 짧아도 3개월이 넘는다. 99년 이후 검찰에 파견된 금감원 직원이 76명에 이르고 지금도 6명이 검찰에 파견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법무부와 검찰은 국회에서 문제가 제기되자 비로소 금감원 직원의 파견 절차에 위법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국회에서 지적하지 않았다면 계속 법령을 위반할 작정이었는지 묻고 싶다.
검찰은 파견 받은 금감원 직원들을 활용해 영장 없이 계좌추적을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으나 파견 과정의 위법성 등으로 미루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물론 금감원 국세청 공직자윤리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 등은 직무상 필요에 따라 영장 없이 계좌추적을 할 수 있다고 관련법에 명시돼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예외조항이 남용(濫用)되면서 ‘영장주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97년 한 해 동안 9만6921건이던 계좌추적 건수가 2000년에는 상반기에만 10만4668건으로 배 이상 늘었고 이 가운데 91.1%가 국세청 등에 의해 영장 없이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무차별 계좌추적의 실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예외’는 어디까지나 예외여야 하는데 이렇게 일반화돼 버린 것은 문제다.
거듭 강조하지만 계좌추적은 정당한 목적과 절차에 따라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영장 없는 계좌추적권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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