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97년 중의원 재직 25주년 때 장기 근속 표창과 특전을 포기해 화제에 오른 것을 비롯해 파격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 일본 정가에서 괴짜로 통해왔다. 계보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여온 자민당의 체질과 발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입바른 언동을 자주해 ‘일언거사(一言居士)’란 별명도 얻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 소신파다. 우정 3사업 민영화론이 대표적이다. 전국적인 우정 관련 조직을 중시해온 자민당 체질상 민영화 주장은 힘들지만 그는 당내에서 외롭게 민영화를 외치며 싸워왔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인기가 없지만 대중적 인기는 높았다.
이번 총재 도전은 세번째. 95년 9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후보와 대결했으나 대패하고 말았다. 98년 7월 두 번째총재 선거에 나섰다 관록을 앞세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 앞에 다시 맥없이 주저앉았다. ‘3수’ 끝에 설욕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항간에는 ‘총리직을 맡기자니 왠지 불안하다’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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