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밀레니엄 대사면’으로 32만여명을 구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용불량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제도권 금융회사들을 이용하기 어려운 신용불량자들은 고금리를 감수하면서 사채시장으로 몰려 각종 사회적 문제마저 불거지고 있다.
정부는 최근 신용불량자에 대한 ‘전과’를 없애는 사면조치를 또 발표했다. 그러나 막상 제도를 시행해야할 은행 카드 등 금융회사들은 효과는 없는 ‘선심성 행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은행기록만 없앤다고 해서 신용불량이 없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용사회의 정착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지적하고 있다.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간단하다. 은행이나 신용카드사로부터 돈을 빌린 뒤 3개월 이상 연체한 경우다. 각 은행은 개인에 대한 신용평가를 위해 500만원 이상을 3개월 이상 연체한 경우엔 연체금을 갚아도 1∼4년간 신용불량 기록을 보존하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이같은 이유로 등록된 신용불량 ‘전과자’는 약 99만명.
▽신용불량 사면내용〓정부는 내달 1일 이들 중 금융사기범 등을 제외하고는 기록을 지워 사면키로 했다. 또 연체자라도 내달말까지 연체금을 갚으면 신용불량 기록을 남기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전과’가 남는 기준도 완화했다. 대출금 상환 즉시 신용불량 전과가 남지 않는 소액 연체금이 은행은 500만원, 신용카드사는 100만원이었으나 이를 각각 1000만원과 200만원으로 올렸다. 기록이 남는 기간도 1∼4년에서 1∼2년으로 단축키로 했다.
정부는 당초 소액 대출자는 6∼12개월 동안 연체해야 신용불량자로 등록하는 등 기준을 완화하려 했으나 시중은행들의 반대로 하반기 검토 사항으로 미뤄졌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전효찬수석연구원은 “IMF이후 기업의 도산이 늘고 구조조정 등 불황형 파산이 많다”며 “연체 금액이 소액이고 연체기간이 짧은 경우 신용불량 기록을 없애 정상적 금융거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면조치 효과있나〓정부의 일괄사면조치와 관련, 금융계에선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신용불량 기록을 없애도 신용불량자가 정상적 금융거래를 할 수 없다는 이유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개인의 경제여건이 바뀌지 않는데 불량기록만 없앤다고 우량자가 되느냐”며 “신용불량자 재발률이 50%에 이른다”고 말했다. 또 과거의 신용거래 자료 자체가 없어지는 만큼 ‘신용거래’는 어렵다는 것.
은행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이번의 사면조치는 금융기관과의 거래에서 발생한 불량거래를 지우는 것이지만 이들 중 70∼80%는 휴대전화요금 상품대금 등도 체납하고 있다”며 “금융기관과의 불량 거래기록을 지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은행에 신용위험 관리를 위해 ‘신용정보시스템(CSS)’을 갖추도록 지시해왔으나 이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불량거래에 대한 정보는 개인의 신용평가에 핵심인데 이 정보를 없앤 신용정보시스템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
금융기관들이 신용불량 정보를 없앨 지도 의문이다. 지난번 사면에서도 일부 카드사 등이 불량기록을 없애지 않아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실제로 기록을 없앴는지 점검을 나오겠다고 하지만 지난번에도 불량 기록을 복사했다 사용한 업체가 꽤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 견해〓한국금융연구원의 고성수박사는 “밀레니엄 대사면에도 불구하고 신용불량자가 늘어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1년 뒤 신용불량자가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금리 차등화 등 신용불량자가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신용불량자 급증에 ‘기여한’ 신용카드와 은행 거래를 분리해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연구원의 강종만박사는 “무분별한 카드 발급으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많은 만큼 가입 기준을 명확히 하고 카드사에 책임을 물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녹색소비자연대가 지난달 서울시내 41곳의 신용카드 가판대를 조사한 결과 39곳이 신분증 없이 신용카드 발급 신청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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