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주성/공적자금의 효과를 따지자

  • 입력 2001년 4월 24일 18시 40분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23일 국회에 보고한 공적자금 운용현황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구조조정과 공적자금에 대한 그릇된 정책판단의 파장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 새삼 일깨워준다.

▼액수보다 효율성이 중요▼

지금까지 금융구조조정에 투입된 이런 저런 공적자금의 총액이 134조7000억원이고, 앞으로 추가로 투입될 금액이 24조∼28조원이라는 사실은 별로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작년 말에 추가 조성된 50조원 중 벌써 반 정도를 썼다고 하지만 쓰기로 한 돈을 쓰는 데 무엇이 문제인가.

투입된 자금의 회수율이 24.4%에 불과하다는 힐난도 별로 타당하지 않다. 공적자금의 상당부분은 현실화된 부실을 청산하는 데 쓰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회수 불능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또 여전히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까지의 회수율을 최종 회수율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곤란하다.

현재 조성된 자금이 충분하냐는 질문에 대해 추가조성 계획은 없으며 현대그룹 계열사의 부도와 같은 돌발사태가 발생하면 그때 가서 말하겠다고 한 진부총리의 답변은 우문현답에 가까운 지당한 말씀이다. 현 시점에서 경제 총수가 ‘예, 돈이 모자랍니다’라거나 ‘추가조성은 절대 없습니다’라는 식의 답변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공적자금의 대의(大義)는 어디로 사라지고 알량한 숫자들만 난무하느냐는 것이다. 공적자금 사용의 1차 목적은 부실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다. 또 구조조정은 1차적으로 부실을 청산하고 나아가 경쟁력을 갖추게 만드는 노력이다.

만일 특정 기업이나 은행의 생존 가능성이 불확실하면 문을 닫는 것이 최선이고 이 과정에서 일회적인 공적자금 투입이 커지는 것은 겁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생존을 전제로 한 자금투입의 경우에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자체 구조조정 노력이 필수 조건이 돼야 한다. 구조조정이 성공해 경쟁력 있는 은행으로 되살아나면 공적자금의 회수율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공적자금의 사용과 구조조정 노력은 동전의 양면처럼 연계돼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이 공적자금을 구조조정 성공의 수단이 아니라 구조조정 실패의 대책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부실은 곧 공적자금이라는 불쾌한 공식이 정책 담당자나 주변 전문가들의 머리를 채우고 있는 한 구조조정이나 경제회복은 요원한 일이다.

공적자금을 사용하는 목적과 원칙이 뒤틀려 있는 상황에서 ‘자금이 충분한가’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예컨대, 현 시점에서 현대건설을 청산하는 것이 최선이라면 공적자금을 새롭게 조성해서라도 채권은행을 지원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반면에 돌발 변수가 없다는 전제 하에 부실 금융기관의 철저한 자구노력만 있다면 진부총리의 답변대로 기존 자금의 회전을 통해서 일을 마무리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공적자금의 단순 총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돈이 투입돼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느냐가 관건이다. 구조조정의 진전이 없다면 공적자금의 회수는 저조할 것이고 자금의 대부분은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경제는 가라앉고 세금은 올라가는 악몽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구조조정 잘되면 회수율 상승▼

진부총리의 국회 보고에서 실망스러웠던 점은 공적자금의 액수가 아니라 텅 빈 의원들의 자리였다. 그나마 참석한 소수 의원들의 발언도 구조조정이라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공적자금이라는 무기를 어떻게 써야 하느냐는 고민보다는 패배를 전제로 한 뒤치다꺼리 걱정이 압도하고 있었다. 국민의 대변인들이 이 정도라면 정부 관료들이 손에 피를 묻히며 적극적으로 나설 리 없다.

구조조정은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책임지고 싸울 병사는 없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은 정치유세 현장의 낯익고 지겨운 목소리들이다. 대형은행 합병과 같은 정책실험과 증시부양과 같은 신기루 잡기에는 열을 올리면서 정작 다급한 일에는 왜들 그리 소극적인지 걱정스럽다. 구조조정의 실마리는 현대문제의 조속하고 투명한 해결과 금융시스템의 정상화라는 필자의 생각이 틀린 것일까. 그렇다면 공적자금이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기억해주길 바랄 뿐이다.

전주성(이화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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