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노래 연극에 '저항정신'녹여
이종상 서울대 박물관장-미술평론가 김주환 교수
▽이종상〓저는 대학 2학년 때 4·19를 맞았습니다.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동숭동 서울대 캠퍼스를 출발해 종로 5가에서 파고다 공원으로 이어지던 시위대 모습과 구호가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3·15선거 당시 내 표를 지키겠다며 대전 집에까지 내려갔는데 이미 투표를 한 것으로 돼 있었어요.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예술에 정진하기 앞서 부정부패 척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주환〓4·19하면 먼 옛날 같은 느낌도 듭니다. 저하고는 23년 정도 차이가 있어요. 아마 요즘 대학을 다니던 친구들이 8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해 느끼는 이미지도 비슷할 겁니다.
▽이〓서울대 입학식과 졸업식에는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이승만 박사가 참석했어요. 당시 입학식에서 있었던 이 박사의 말을 잊지 못합니다. ‘우리도 뭉치면 아침마다 신선한 우유가 집 앞에 배달되는 풍요로운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뒤집어보면 뭉쳐야만 우유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경제사정이 어려웠다는 얘기지요. 당시로서는 우유가 배달되고, 드넓은 초원에 젖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장면 따위는 밀레의 ‘만종’처럼 현실과 거리가 먼 그림 속의 목가적 장면에 불과했습니다.
▽김〓저는 교육이 두 세대의 문화적 정신과 특징을 결정지었다고 생각합니다. 4·19 세대는 해방 이후 초등학교 때부터 한글로 교육받은 첫 세대입니다. 반면 386 세대를 키운 것은 역설적으로 유신교육이었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을 보면 80년대 학생 운동이 주장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민족중흥의 역사…’ 운운하는 것을 살짝 뒤집으면 강력한 민족주의죠.
▽이〓61년 4·19직후 국전에 대장간을 소재로 한 ‘장(匠)’이란 작품을 출품했어요. 아시다시피 대장간은 무디게 된 연장을 불에 달구고 때려서 쓸모 있게 만드는 곳이지요. 곧, 개혁과 혁명을 암시하는 소재란 말입니다. 조선 후기 단원 김홍도가 그린 ‘대장간’ 그림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까닭도 여기 있습니다. ‘쇠는 달궈졌을 때 치라’는 속담처럼, 결국 5·16으로 좌절된 4·19의 혁명정신을 어떻게 그림으로 은유해 메시지를 전달하느냐가 관심사였습니다.
▽김〓두 세대는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각기 뚜렷한 예술적 스펙트럼을 만들었습니다. 4·19세대는 청바지와 통기타로 상징되는 청년문화 형성에 영향을 미쳤고, 386세대는 민중 미술과 열린 무대의 마당극,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등의 노래운동이 탄생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60년대 초 신성불가침의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청년의 저항정신이 그동안 소외됐던 민중의 삶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어요. 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 선보이게 되자 당시 금기시됐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오해받기에 이르렀어요. 정치적 상황과 시대의 미적 감각에 따라 차이가 있을지라도 80년대 민중미술의 정신적 맥락이 결코 단상적이고 우발적이지만은 않다는 얘기입니다. 한편 민중미술이 저항적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데 치중한 반면 예술적 승화에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김〓최근 인사동의 갤러리에서 여러 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80년대 학생회관에 걸렸을 법한 판화 등 민중투쟁의 구호를 담은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팔리는 것을 목격했어요. 달력과 장신구 등으로 다양하게 상품화됐어요. 이는 민중미술이 소장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잡은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민중미술은 ‘예술은 이래야 된다’는 식의 형식화된 미적 감각의 틀을 깼어요.
▽이〓적어도 4·19와 386은 직접적인 행동이든 예술적 표현이든 ‘정의에 대한 결집력과 불의에 대한 저항력’이 존재했습니다. 그렇지만 점점 신세대로 오면서 온 오프의 흑백논리와 실용주의 디지털 문화로 각박해지고 정서적으로도 황량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김〓제 학번과 같은 82년 출생한 학생들이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들의 교육적 배경은 문민정부의 교육이었고 외환위기를 거쳐 성장했어요. 민족주의적 자부심은 엷은 반면 경제적으로 열악했던 이전 세대보다도 더 ‘먹고사는 문제’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제가 이들에게 느끼는 공통점은 ‘뚜렷한 억압도 없는 대신 뚜렷한 희망도 없다’는 것입니다. 4·19와 386세대는 자신들이 지식인으로서 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그런 게 없는 것 같아요.
▽이〓이번 대담을 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세대와 세대간의 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세대간 문화와 인식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조화시킬 수 있는 대화의 자리가 자주 만들어지는 게 중요해요.
<정리〓김갑식기자>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