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서울대 개혁론 펴는 장회익 교수

  • 입력 2001년 4월 26일 18시 42분


《“학벌이 봉건시대의 신분을 넘어서는 최상의 자산이 됐다”.

서울대 장회익(張會翼·63)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특정 대학의 꼬리표가 취업과 승진을 좌우하고, 사회활동에 영향을 미치며, 평생 꼬리표처럼 작용한다는 의미에서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부터 전국의 인재들이 서울대에 들어가기 위해 목매는 것도 이같은 ‘서울대 지상주의’에서 비롯된다. 장교수는 극단적 혼란과 위기에 처해있는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해 최근 ‘한시적으로 서울대 간판을 내리자’고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40년전 서울대를 졸업하고 30년간 서울대에 봉직해온 교수가 서울대 폐지론에 가까운 서울대 개혁론을 내놓은 것이다. 한국적 과학문화의 정립을 필생의 목표로 삼아온 물리학계의 중진이 왜 이같은 획기적 주장을 하게 됐을까. 인터뷰는 이런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자유롭기 때문이다. 나는 교육학자도 아니고, 대학 행정에 관여하고 있지도 않으며, 교육관련 자문역할 하는 것도 없다. 지금까지는 교육당국이나 ‘높은 곳’에서 교육관련 정책이 일방적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일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의견이 수렴되는 것이 순리아닌가.”

기자가 연구실을 찾은 25일에도 장교수는 ‘서울대 개혁론’에 관해 묻고 자료를 요청하는 전화통화로 분주했다. 훌쩍 큰 키에 형형한 눈빛, 아침 7시반이면 어김없이 연구실에 도착하는 그는 “어린 학생들이 서울대에 들어오기 위해 몇년씩, 새벽부터 밤중까지 전쟁을 치르는 것이 어디 정상이냐”고 반문했다. 서울대에 있는 사람으로서, 서울대로 인해 많은이들이 몸살을 앓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10년간 서울대 명칭의 입학생과 졸업생을 내지 말자는 발표는 현실적이라기 보다 충격적”이라고 기자가 운을 뗐다.

“서울대 개혁론이나 폐지론이라기 보다는 서울대 개방방안으로 이해하기를 바란다. 서울대를 포함한 주요 국립대가 상호보완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해 함께 교육하자는 취지다. 현행 서울대 학사과정 입학정원을 10개 이내의 협력 대학교에 배정하여 이들 대학에서 교육하는 한편, 서울대는 이들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 중 원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엄한 교육’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서울대 간판의 입학생과 졸업생을 낳지 않으면서도 수준높은 교육이 가능해 우리나라의 교육 정상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장교수는 한국교육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걸림돌이 대학의 오도된 서열화라며 “이제 어떤 대가를 지불하면서라도 이 문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이같은 주장의 배경을 설명했다.

“지금 학생들은 배우고 가르친다는 교육의 본질때문이 아니라 서울대라는 ‘브랜드’를 보고 서울대를 지원한다. 그런데 이 브랜드 가치가 상대적으로 너무 높게 평가돼 젊은이들의 생애에 굉장히 중요한 신분상의 딱지가 돼버렸다. 이때문에 학생들은 서울대 브랜드를 따기 위해 전쟁을 치른다. 밤 12시, 1시까지 머리 싸매고 시험공부를 하는데 그 귀한 시간에 하는 것이 공부가 아니라 정답찍기 연습에 불과하다. 한창 지적욕구가 솟구치는 청소년들이 원하는 학습을 하기 위해 조사연구를 하고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40여년 전 장교수는 그러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아 공부를 재미삼아 했다. 토목기사였던 아버지가 늘 도형이 그려진 수학책이나 물리학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시절 그는 읍내다리를 지나가다 난간에 비친 햇빛의 농도 차이를 삼각함수를 이용해 계산해보고, 같은 방법으로 해가 다 지지 않았는데도 어두워지는 현상을 설명해내기도 했다.

청주공고에 진학한 것도 좀더 빨리 과학을 접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월등한 성적으로 입학하자 공대 출신의 담임선생님은 그에게 대학교재로 쓰는 미적분책을 주며 공부하는 기쁨을 느끼게 했다.

“학생들에게 학습의 즐거움을 찾아주기 위해 서울대 입시제도를 바꾼다고 치자. 그러면 교육이 정상화될까. 아니다. 시험제도에 따라 또다른 과외가 생겨나고 새로운 문제가 나타날 터이다.”

그는 이때문에 서울대를 개방하자는 논지를 펴게 된 것이라며 이같은 개선안이 ‘이상한 교수’ 혼자만의 돌출행동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달라고 기자에게 당부했다. 장교수가 기초한 ‘대학간 협력을 통한 국립대학교 학사과정 개방화 방안’은 백낙청 안경환 한상진 이애주씨 등 교수 20명의 공동발의 형태로 20일 교수신문 주최의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됐다. 그는 “한 개인이 서울대 개혁에 대해 말하는 건 별게 아니지만 20명의 교수가 합의한다는 것은 대학사회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며 심포지엄 당시 동료교수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벌위주의 사회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서울대가 없어지더라도 제2의 서울대가 나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딴지’를 걸어봤다.

“그 학벌의 딱지가 상한가로 치솟으면서도 내실은 떨어지기 때문에 문제아닌가. 자신의 선호도와 특징에 따라 고를 수 있는 대학이 최소한 10개쯤 있게 되면 우수한 학생들이 그 대학을 선택할 것이다. ‘어떤 분야는 이 학교가 최고’ 식으로 특성이 드러나면 차츰 새로운 풍토가 형성되지 않겠는가.”

이번 서울대 개혁안 말고도 장교수는 사회현실에 대해 부단히 올곧은 발언을 해왔다. 87년 4·13호헌조치 반대성명을 비롯, 95년 5·18피고소 고발인들에 대한 불기소 항의성명, 97년 서울대교수 시국성명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천착하고 이를 대중화하는데 각별한 열정을 보여온 그에게 “자연과학자로서는 흔치 않은 모습”이라고 했더니 장교수는 “과학이란 사물을 보는 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눈으로 과학의 대상만을 볼 수도 있지만 과학이 아닌 다른 쪽을 보면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 그러다 보면 발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리학자로서 그의 학문적 성과는 ‘온생명’ 사상으로 모아진다. 온생명론을 한마디로 하는 것이 용서된다면 ‘지구의 모든 생명은 한덩어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지구 전체를 하나의 생명단위로 보는 이 틀안에서 인간은 온생명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간중심의 가치관을 버리고 생태학적 세계관을 지녀야 한다고 믿는 장교수는 열렬한 환경주의자이기도 하다. 아침 6시에 경기 일산의 집을 나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서울대입구까지 온 다음 넥타이맨 정장 차림으로 산을 타고 학교에 온다.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나까지 자동차를 끌고나와 공해를 가중시킬 것이 무에 있느냐”는 생각에서다.

이같은 삶은 박사과정 중에 접했던 데이빗 소로의 ‘월든’에 영향받은 바 크다. 관습과 문명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삶의 본질 속으로 뛰어드는 작가를 보며, 인간이 거의 필요하지 않거나 외려 거추장스러운 짐만 될 뿐인 것들을 얻기 위해 자연을 얼마나 훼손하며 소중한 삶을 낭비하는지 가슴을 쳤다.

물리학을 바탕으로 생명과학과 동양사상을 천착해온 장교수는 현재의 인간이 암세포 같은 존재라고 일갈한다. 암세포가 생명체 내에서 유기적 관계를 파괴할 뿐 아니라 자기복제를 계속해 암을 퍼뜨리듯이, 지구촌에서 인간이 하는 짓도 그러하다는 지적이다. 인간 스스로 자제하고 온생명의 아픈 부분을 돌보지 않으면 살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그는 우려한다.

“인간이 온생명의 암적존재라면 서울대는 교육의 암적존재로 보여진다”고 했더니 장교수는 “그건 좀 심한 표현”이라며 조심스러워 했다. 그러나 지구의 생명력을 복원하기 위해 인간 중심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하듯이, 교육의 생명력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왜 교육을 받느냐’는 본질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교육의 본질이란 아주 간단하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시험공부를 당연시 한다. 시험이란 얼마나 공부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지 그것이 본질이 돼서는 안된다. 아인쉬타인도 시험제도가 교육에서 가장 큰 해악이라고 하지 않았나. 공부를 하는 그 자체에서 결실을 얻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간판을 더 중시하는 것은 교육의 본질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교육의 본질로 돌아갈 때가 됐다. 서울대부터 나서야 한다.”

▼장회익 교수는▼

△1938년 경북 예천 출생

△1961년 서울대 문리대 물리학과 졸업

△1969년 미국 루이지아나 주립대 물리학박사 취득

△1971년―현재 서울대 자연과학대 물리학부 교수 겸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겸임교수

△저서 ‘과학과 메타과학’(1990년) ‘삶과 온생명’(1998년) 등 다수

▼10여개 대학과 협력 서울대 열린교육을▼

어느나라에나 명문대학은 있기 마련이다. 이들 대학은 유능한 인재를 길러내고 하급학교 학생들의 학습의욕을 부추기는 순기능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명문대학들의 성가가 그 내실을 크게 넘어섬으로써 아예 교육전체의 숨통을 막고 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서울대와 10개 이내의 국립대학 사이에 협력체제를 구축, 서울대는 앞으로 10년간 한시적으로 학사과정을 독자적으로 운영하지 않는 대신 그 정원에 해당하는 인원을 협력대에 분산 배정함과 동시에 이들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력과 시설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열린 교육’을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최상급의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기왕의 명문 사립대를 선택해야 할지, 혹은 여타 국립대에 입학해 서울대의 열린 교육을 받아야할지를 고심하게 되면 이른바 ‘서울대 문제’가 없어진다. 이는 교육의 정상화 뿐 아니라 지역의 균형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 시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는 국내 총생산의 일정비율을 투여한다는 조건으로 ‘교육정상화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만난사람=김순덕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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