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인디적인 성향이 강한 <라이방>이 <걸어서 하늘까지> <게임의 법칙> <본 투 킬> 등 한때 잘 나가는 액션 영화를 만들었던 장현수 감독의 신작이라는 건 예상 밖의 일이다. <남자의 향기>의 처참한 실패 이후 신작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그는 어렵게 완성된 <라이방>을 들고 전주를 찾았다.
8개월 간 창고에 갇혀있던 <라이방>이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관객 및 영화관계자들의 호평이 줄을 잇고 있다. 만들어진 과정이 너무도 우울했던 장현수 감독의 <라이방>은 뜻밖에도 우울한 이야기를 경쾌하게 풀어간다. 돈 벌 일은 막막하고, 게다가 회사 상무에게 사기까지 당한 세 명의 택시 운전사가 한탕을 노려 점쟁이 할머니 집을 털지만 그것마저 실패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직하고 의리파인 해곤, 대학까지 졸업한 엘리트 택시운전사 준형, 30대 후반에 벌써 18살짜리 딸을 둔 양아치 같은 남자 학락. 이들 세 명의 택시운전사는 막막한 세상살이를 치기어린 농담으로 풀어간다. 맥주 집에 마주앉아 나누는 이야기는 시시껄렁한 농담뿐. 베트남 참전용사를 삼촌으로 둔 학락은 말끝마다 ‘베트남’이야기를 달고 살고 결국 그들의 마지막 파라다이스는 베트남이 된다.
제목 ‘라이방’은 선글라스의 대명사인 ‘레이반’을 베트남 식으로 발음한 것.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허름한 일상의 단면을 역설적으로 우습게 뒤바꿔버린다. 너무도 직설적인 밑바닥 인생의 단면이기에 우울함을 느낄 틈마저 없다.
전작에서 비장미 넘치는 장렬한 액션을 선보였던 장현수 감독은 어깨에 힘을 빼고 진짜 밑바닥 인생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젠 그에게도 삶의 넋두리를 농담으로 풀어낼 만한 연륜이 생긴 것일까.
아주 우울하게 만들어진 영화가 발랄한 유머로 버무려져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하지만 <라이방>의 색깔이 밝아진 데에는 영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장현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난 이제 흥행에 연연하지 않는다. 상업성, 작품성에 연연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며 사는 감독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되나? 그런 면에서 난 행복한 감독이다”라고.
거대 시스템에서 자유로워진 그는 비록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담론 안에 갇혀 있었지만 삶의 진정성에는 가까이 다가갔다.
다행히 <라이방>은 관객 및 영화 관계자들의 호평에 힘입어 브에나비스타의 배급 라인을 타고 조만간 전국 극장에 걸릴 예정이다.
황희연<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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