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문이 열리자마자 1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오마하시민강당으로 봇물처럼 밀려들어갔다. 단상 근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소리없는 자리다툼이 이어졌다. 안내요원들이 정중하면서도 물샐틈없는 감시로 카메라 플래시와 환호성이 터지는 것은 가까스로 막았다. 유명가수의 콘서트장을 방불케하는 들뜬 분위기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오전 9시 30분. 두툼한 안경을 쓴 한 중년신사가 단상에 올랐다. 술렁이던 소리가 일순 잦아들었다. ‘350억달러(약 45조원)의 거부(巨富)’, 그보다는 ‘오마하의 현인(賢人)’으로 더 자주 불리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70)이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시카고에서 온 6년째 투자자 스티브 게이트. “먼저, 올해 버크셔 주식을 판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업의 주식 보유량을 거저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1만5000명은 족히 되는 주주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버크셔의 주가는 올초 2400달러에서 4월초에 2100달러까지 떨어진 뒤 4월말에는 2270달러로 반등했다. “그 말씀 꼭 전해드리죠.” 버핏의 능청스러운 대꾸에 폭소가 터졌다.
“이건 무슨 사이비종교의 연례의식 같다.” 취재차 영국에서 날아온 한 기자가 혀를 내둘렀다. 미국의 재테크사이트 풀닷컴(www.fool.com)의 칼럼니스트는 ‘35년 연속 5할대를 유지해온 타격왕의 기술전수캠프’에 비유한다. 공인된 표현은 ‘부자들의 우드스톡(Woodstock for Capital―ists)’. 69년 8월 뉴욕주의 한 농장에서 열린 저항정신으로 가득찬 미국 젊은이들의 음악축제에 빗댄 말이다.
이날 장장 7시간에 걸친 주주들과의 대화에서 버핏은 다시금 가치주 투자의 원칙을 설파했다.
“가치주와 성장주를 구분하는 것은 헛소리다. 성장성은 주식의 가치를 늘려주는 한 요인에 불과하다. 기업의 가치는 결국 그 기업이 토해내는 현금의 양이 결정한다. 난공불락의 경쟁력 우위를 가진 기업에 장기투자해야 큰돈을 벌 수 있다.”
미국증시 전망을 묻자 그의 얼굴은 굳어졌다.
“(미국에서) 주식투자는 앞으로 15년 간은 6∼7%의 수익밖에 낼 수 없다. 증권사에서 찍어주는 종목으로 15%의 수익률을 내겠다니, 꿈 깨시죠.”
왜 기술주를 사지 않는가.
“기술주 거품은 반드시 꺼지게 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20년대와는 달리 나라 전체의 파국까지 초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거품은 왜 생기는가.
“유명화가의 그림을 살 때와 같다. 사람들은 내재가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 그림이 전에 얼마에 팔렸는지만 생각한다. 자꾸 그렇게 가격이 매겨지다 보면 나름의 법칙이 생겨난다.”
인터넷의 영향에 대해서 열 살짜리 주주가 묻자 의외로 뜸을 들였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신문사(워싱턴포스트·지분 18%, 버펄로뉴스)와 출판사(월드북)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하지만 우리 보석소매업체와 보험사에 대해서는 양날의 칼이다.”
작년 주주모임에서 “인터넷은 사회적 효율성은 높이지만 기업 수익성은 절대로 높이지 못한다”고 단언한 것에 비하면 한 발 물러선 셈이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돈을 버는 문제에 관한 한 이번에도 가차없었다. “인터넷은 순진한 사람들을 속여 돈을 버는 ‘꾼’들을 양산했다. 인터넷(주식)은 거대한 함정이다.”
오마하의 축제가 끝나자 연례행사처럼 찬사와 아울러 갖가지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는 벽돌, 카펫, 페인트 같은 최첨단(cutting―edge) 산업으로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다(2001년 연례보고서)’니 이 무슨 정신나간 소리냐”는 야유가 대부분이다. “‘아는 종목을, 가급적 전량 사들여서, 영원히 갖고 간다’는 투자원칙은 좀 미련한 데가 있다”는 일리있는 비판도 제기됐다. ‘당장의 주가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배짱이 한번 손을 댔다 하면 1000억원 이상을 쏟아붓는 버핏한테야 모르겠지만 기껏 수천만원을 갖고 애걸복걸하는 평범한 투자자들한테는 얼마나 배부른 소리이겠는가.
기술주를 외면하는 구실로 내세우는 “10년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업종의 주식은 사지 않는다”는 원칙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스스로 ‘인터넷으로 인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인정하는 신문사나 출판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지 않는가”하는 것.
하지만 투자원칙에 일관성이 있든 없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자요, 아직까지는 그의 투자방식이 잘 먹히고 있다는 점이다. “맘에 안 드신다고요. 그럼 인터넷으로 돈 잘버는 사람한테 가보시죠. 하여튼 우린 기술주 투자는 안 한다니까요.”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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