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분실됐기 때문일까. 물론 아니다.
지금은 총타수로 승부를 가리는 스트로크플레이가 일반화됐지만 미국PGA챔피언십은 당시까지 매치플레이 전통을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미국PGA측이 어쩔수 없이 ‘고집’을 꺾은 것은 바로 TV중계 때문.
방송사로부터 TV중계권료를 받으려면 일정한 경기시간 확보가 필수요건. 하지만 최악의 경우 10번홀에서도 승부가 판가름날수 있는 매치플레이는 경기시간이 뜰쭉날쭉해 방송사측이 광고시간 배정문제로 난색을 표했다.
이렇듯 TV중계는 골프뿐만 대부분의 스포츠 여러부문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쳐왔다. 컬러볼(배구,탁구) 컬러유도복 등 사용하는 장비의 색상까지도 변화시켰을 정도.
지난달 9일 새벽 제65회 마스터스골프대회 최종 라운드를 전세계 골프팬의 안방에 전달한 미국CBS―TV 생중계는 TV라는 매체의 위력을 여실히 증명했다.
최종 18번홀(파4·405야드)에서 호쾌한 드라이버 티샷을 날린 타이거 우즈가 두 번째 샷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때 화면 상단에는 다음과 같은 자막이 나타났다.
‘드라이버샷 327야드, 핀까지 남은 거리 78야드’.
뒤이어 ‘우즈가 샌드웨지를 잡았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1야드단위까지 그 짧은 시간에 측정이 가능했을까. 또 선수가 어떤 클럽을 선택했는지 알수 있었을까.
그것은 코스 전역에 전문기록원들이 배치돼 레이저거리측정기와 전지구위치파악시스템(GPS)을 이용했기 때문. 거리는 ‘야드’보다 더 세밀한 ‘인치’단위까지도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 또 각 조마다 따라다니는 기록원이 손바닥 크기의 무선데이타전송기로 페어웨이와 그린적중 여부, 사용한 클럽 등 각종 데이터를 메인컴퓨터에 입력하면 곧바로 생방송에 활용할수 있다.
골프대회에 각종 첨단장비가 동원되는 것은 TV라는 매체의 특성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다. 결국 TV생중계 때문에 이제 골프는 야구에 버금가는 수십가지 항목의 통계수치를 얻을수 있는 ‘기록경기’가 돼버렸다.
만약 TV가 없었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골프대회는 여전히 매치플레이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영식기자>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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