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무선시대 편리함뒤 '보이지않는 구속'

  • 입력 2001년 5월 3일 18시 38분


1994년이 인터넷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해였다면, 2001년은 무선기기의 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휴대전화가 대표적인 증거이다.

그러나 휴대전화는 그저 겉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물건이 무선통신 기능을 갖추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IBM은 디지털 장신구를 개발하고 있다. 귀고리, 팔찌, 목걸이, 마이크, 카메라 등에 초소형 배터리로 작동하는 무선통신 기능을 심는 것이다. 이 물건들은 밤이 되어 사람들이 잠든 후에도 충전기 안에서 자기들끼리 열심히 데이터를 교환하며 작업을 할 것이다. 아이들이 자는 동안 장난감들이 깨어나 즐겁게 장난을 치던 만화의 한 장면이 현실이 되는 셈이다.

▼한밤중 장난감 끼리 정보교신▼

그렇다면 도처에서 정보가 빛의 속도로 교환되며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 것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미래일까. 인간이 지식을 추구하는 동물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시도 쉬지 않고 전달되는 정보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면 우리의 미래는 악몽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현재 실리콘 밸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중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컴퓨터’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말 그대로 벽, 탁자, 의자, 옷 등 어디에나 부착될 수 있는 컴퓨터를 가리키는 말이다. 심지어 버클리의 한 연구팀은 ‘스마트 먼지’라는 이름의 컴퓨터를 개발하고 있기까지 하다. 먼지처럼 작고 진짜 먼지처럼 허공을 떠다니게 될 이 컴퓨터가 성공적으로 개발된다면 사람들 주위의 공기조차 컴퓨터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이런 세상이 되면 왼쪽 귀고리가 무선통신으로 오른쪽 귀고리와 정보를 교환하고, 목걸이가 무선으로 연결되는 호출기가 되고, 반지가 지도 대신 길을 알려주는 장치가 될지도 모른다. 혹은 컴퓨터가 작아지다 못해 아예 사람 몸에 심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아져서 귀고리나 반지 따위가 필요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렇게 작은 컴퓨터를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람들의 손가락이 지금보다 작아지지 않는 한 초소형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짜증나는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음성인식 기술은 아직도 완벽하게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학자들과 기술자들은 기술이 꾸준히 계속해서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IBM에서 ‘어디에나 있는 컴퓨터’ 연구를 이끌고 있는 미셸 메이어는 기계와 기계가 서로 얘기를 나누고, 식기 세척기가 전기요금을 놓고 사람 대신 전기회사와 협상을 벌이는 시대에 우리가 이미 거의 도달해 있다고 단언한다.

사실 미국 가정에는 이미 여러 가지 물건들에 내장된 컴퓨터가 평균 40대 이상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해에 새로 생산된 마이크로프로세서만도 80억개에 달한다.

그러나 새로운 가능성에는 새로운 불안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아직 VCR나 커피메이커의 타이머 작동법조차 완전히 터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마당에 온 집안이 컴퓨터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공상과학 소설가들이 누차 지적한 대로 사람들이 쉽게 사용법을 터득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수리할 수 없을 만큼 기계들이 너무 복잡해지면 사람이 기계에만 무기력하게 의존하는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다.

또한 모든 물건이 무선통신에 의해 작동하게 된다면 개인의 사생활 노출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동차에 위성항법장치(GPS)를 설치하는 경우, 이 장치와 무선으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언제 어디서나 그 사람의 위치를 추적해낼 수 있는 것이다.

정보 채널의 증가로 인한 광고의 홍수 역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이미 광고들이 흘러 넘치고 있다. 그러나 집 안에 있는 가전제품의 표시창에 무선으로 들어온 광고가 뜨고, 가게 앞을 지나갈 때 휴대전화에서 “들어오세요! 10% 할인입니다!” 같은 소리가 터져 나온다면 일상생활에서 광고를 걸러내는 일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밖에 정보의 접근권 문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보가 곧 돈이 되는 사회에서 노트북 컴퓨터, 인터넷 접속,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휴대전화 등이 앞으로도 빈곤층에게 그림의 떡 같은 존재로 남아있게 된다면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우리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뿔이 아름다운 동물이 되기 위해 자꾸만 뿔이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를 한 끝에 결국 목적을 이뤘지만, 뿔의 무게 때문에 머리를 들 수 없어 멸종해버렸다는 사슴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 아닐까.

하지만 네트워크가 문제만 잔뜩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휴렛패커드 샌드힐 연구소의 버나도 휴버먼은 사람들이 비공식적으로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들이 전문가들보다 더 많은 지식과 더 나은 사고로 개인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오늘날 인터넷이 이런 공동체들의 활동장소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동체서 해법 찾아야▼

결국 우리가 미래의 기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는 불만들은 어쩌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이 갖기 마련인 저항심리의 소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은 새로 기술이 등장하면 처음에는 그 기술을 무시하고 싫어했다. 하지만 그러다가 결국은 그 기술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가 언제 어떻게 해서 무시에서 의존으로 옮겨가게 되었는지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http://www.nytimes.com/2001/04/22/magazine/22CONNECTIVITY.html)

▼무선기기 아직은 유선에 의존▼

미래는 무선기기의 시대라지만 아직 무선기기들은 완벽하지 않다. 아직 대중화돼있는 제품도 많지 않고, 그나마 장소를 옮기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또한 선이 완전히 없어진 것도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무선기기의 시대를 맞아 이 새로운 기계들을 직접 체험해보아야 한다는 뜻에서 필자에게 지금 나와 있는 무선기기들을 사용해보도록 의뢰했다. 그래서 필자는 전자우편 메시지가 들어올 때마다 진동하는 블랙베리의 쌍방향 호출기를 엉덩이에 매달고, 눈동자 바로 앞에 영상과 메시지를 띄워주는 아이오 디스플레이 시스템스 아이글라스를 쓰고, 위성항법장치를 이용해 운전자에게 말로 길을 알려주는 컴퓨터가 장착된 자동차를 몰고 길을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이 ‘무선’기기들을 사용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선들이 만만치 않았다. 필자가 준비한 것들을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1. 노트북 컴퓨터를 위한 어댑터와 전선.

2. 휴대전화와 노트북 컴퓨터를 연결하기 위한 케이블.

3. 포켓용 컴퓨터 충전기, 어댑터, 전선.

4.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와 노트북 컴퓨터를 연결하기 위한 케이블과 이어폰.

5. 디지털 카메라와 노트북 컴퓨터를 연결하기 위한 케이블.

6. 배터리.

필자는 부피를 줄이기 위해 이 전선과 케이블들을 모두 둘둘 말아놓았다. 이 광경을 걱정스럽게 보고 있던 필자의 아내가 한 마디 했다.

“당신 미르 우주정거장이라도 하나 차릴 셈이에요?”

△필자: 제임스 글라이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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