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법원과 '사회적 강자'

  • 입력 2001년 5월 4일 18시 27분


미국은 '갈등의 불씨' 를 안고 있는 나라다. 이민국가인 미국의 역사는 인종 지역 계층간 충돌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사회의 갈등은 대부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소돼 왔다. 노예제도를 둘러싼 19세기 남북전쟁 이후에도 몇차례 인종폭동이 일어났지만 심각한 사회불안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미국사회를 지탱하는 이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법치주의를 꼽는 학자들이 많다.

▷미국에서 법원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모든 정치 사회적 분쟁이 법원의 판결을 통해 해결된다. 특히 연방대법원은 미국 사회의 양심의 거울이란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다. 프랑스의 한 정치학자는 "미국의 평화와 번영은 물론 존재 그 자체가 연방대법원의 손에 달려 있다" 고 설명하기도 했다. 물론 연방대법원이 누가 봐도 공정한 판결만 내려온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린 적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에 충실했고 이것이 국민의 절대적 신뢰로 이어졌다.

▷우리는 어떤가. 안타깝게도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다름아닌 현직 부장판사의 진단이다. 서울지법 문흥수(文興洙)부장판사는 엊그제 '법률신문' 에 기고한 글을 통해 "국민은 사회적 강자에 대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바라고 있는데 그 기대가 번번이 허물어지고 있다" 고 지적했다. 최근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판결을 스스로 비판한 것이다. 얼마전 한 정치인은 징역5년에 추징금 33억5000만원을 선고받고도 법정구속을 면하기도 했다. 현역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문제의 정치인은 판결이 있은 뒤 이른바 3당연합 의 한 축이 됐다. 그러니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국민의 눈에는 그에 대한 재판이 정치적 판단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다. 국민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도식(圖式)이 자리잡고 있다. 정치인 고위공직자 등 사회적 강자는 으레 거물급 변호사를 선임하고 얼마안가 보석이나 집행유예로 풀려나오는게 바로 그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곧 사법권 독립의 역사다.

<송대근 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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