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뒤의 깨달음
오래 전에 졸업한 제자 하나가 주례를 부탁하러 연구실로 찾아왔다. 모처럼 아끼던 제자를 만났기에 쓰던 논문을 제쳐놓고 녹차를 준비했다. 첫잔 찻물이 우러날 즈음 “삐리릭∼” 울려오는 휴대폰 소리. 그는 얼른 전화를 꺼내 통화를 시작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둘째 잔 찻물이 우러날 때쯤 다시 울려오는 휴대폰 소리.
우리가 마주했던 한 시간 여 동안 그가 받은 전화가 대여섯 통은 넘을 것이다. 정담을 나눌 만하면 순식간에 끼여들어 분위기를 망쳐버리는 침입자. 그러나 그는 이런 침입자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듯 시종일관 전화기를 켜놓은 상태로 대비하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주례서기를 거절하고 말았다.
▽쓸데없이 분주한 현대인
소중하게 몰두해야 할 순간을 하찮은 일들로 조각내 버리는 사람, 너무도 자기중심적이어서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마저 결여된 사람을 좋은 배우자감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오랜만의 정겨운 만남을 하찮은 전화통화 때문에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의 모습은 분주하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티베트의 영적 스승인 소걀 린포체는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많은 하찮은 일들이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하루 하루가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전화통화나 사소한 잡무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는 정작 중요한 문제와는 마주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소걀 린포체는 ‘깨달음 뒤의 깨달음’(민음사2001)이라는 명상록에서, 진정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망각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청량한 경각음을 들려준다.
“여러분의 마음을 안식처로 가져가십시오.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쉬게 하십시오.”
▽욕망의 '감옥'에서 탈출하자
‘마음을 안식처로 가져간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나를 분주하게 만드는 온갖 잡무로부터 벗어나 평정한 상태에서 자신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일을 의미한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욕망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어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현대사회는 ‘시간’과 ‘욕망’의 함수관계 위에서 굴러간다. 끝없는 속도전과 시간의 분절화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효율성은 자본증식이라는 욕망을 위해 기여한다. 시간과 욕망의 굴레 속에서 배태된 노예적 타성(惰性)은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소중한 것들을 망각케 한다. 린포체는 이렇게 권유한다.
“잠시 앉아보십시오. 온갖 마음의 긴장을 풀고 명상 속에서 감동과 황홀함을 느껴보세요.… 명상이란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고려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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