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한국인에게 일본은 무엇인가

  • 입력 2001년 5월 4일 19시 01분


◇한국인에게 일본은 무엇인가/정대균 지음/이경덕 옮김/248쪽, 9000원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 문제 때문에 가까스로 해빙 무드로 접어들던 한일 관계가 매우 버거워졌다. 일본의 우익화가 어제 오늘의 일은 물론 아니지만 한 고고학자의 역사조작 비리가 만천하에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 두 사건 간의 연결고리가 못내 석연치 않다. 일본의 열등의식은 필경 이런 식으로 그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역사 유물을 조작한 일본 고고학자의 추락은 일본으로서 받아들이기 아픈 상처였다. 그가 조작한 역사는 일본으로 하여금 모든 문물이 대륙에서 온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갖고 있던 것임을 자랑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일본에서 대륙으로 문화가 전파되었노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어쩌랴. 생물이든 문화든 대륙에서 반도를 거쳐 섬으로 가게 마련인 걸.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려 한다. 그런 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그야말로 한심할 따름이다. 막다른 골목에 갇힌 쥐에게 항의를 하는가 하면 국회의원이 쥐 굴 앞에서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급기야는 우리나라가 안중근, 김구 등 나라의 미래도 모르는 무식한 독립운동가들이 판치는 나라라며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이름의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한 고등학생도 나타났다.

우린 일본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일본은 우릴 36년 간이나 뜯어봤고 지금도 손바닥 위에 놓고 살피고 있다. 하지만 우리 대학에는 일본학과조차 제대로 없다. 알아야 사랑을 하든 싸움을 하든 할 것이 아닌가.

일본을 이해하는 첫걸음으로 ‘한국인에게 일본은 무엇인가’를 권한다. 이 책은 먼저 출간된 ‘일본인은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강·1996)’의 자매편이자 완결 본이다. 두 권을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이제는 ‘멸시와 동경’ ‘자조와 자존’의 극단적인 이분법을 넘어 냉정한 합리주의의 시각으로 일본을 재분석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식민지 세대와 한글 세대 간의 일본관의 차이도 단순한 부정과 긍정의 골을 벗어나야 한다.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 달리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단순한 감성의 수준이 아니라 정량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얼마 전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는 ‘일본의 한국 선망’이라는 특집기사가 실렸지만, 일본의 우리 베끼기가 피부를 간질이는 정도라면 일본 문화는 은근히 우리 뼈 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아 섬뜩하다.

최재천(서울대 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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