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학 지음
312쪽 1만원 신구문화사
조선후기 문화 르네상스시대로 불리는 200여년 전 정조시대(재위 1776∼1800). 이 책은 정조의 개혁정치와 그 전개과정, 정조의 죽음과 꿈의 좌절, 당대의 사상과 문화 등 정조대를 총체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정조시대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저자의 연구 결과가 밀도 있게 담겨 있다.
총체적 고찰이지만 저자가 특히 초점을 맞춘 대목은 정조와 그의 시대에 대한 오해와 왜곡.
가장 주목하는 것은 정조 독살설. 개혁의 화신 정조가 노론 벽파에 의해 독살되고 이로 인해 자주적 근대화가 좌절되었다는 것이 정조 독살론자들의 견해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소설적 상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차라리 반역사적 의식의 소산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이런 주장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 낙후한 정치의식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굴절된 역사의식의 잔재가 깔려있고 무엇보다도 선동에 휩쓸리기 좋아했던 불행한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노론 벽파에게 ‘정조의 개혁을 거부한 보수반동집단’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것 역시 역사를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이라는 비판도 빼놓지 않는다.
저자의 비판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의 개혁이 정조 1인에 의해 주도됐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이는 당시 양반관료체제라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견해라고 일침을 가한다. 기본적으로 학술서적이지만 이같은 흥미로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150여 점의 풍부한 자료사진과 함께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단원 김홍도 등 당대 최고 지성들의 사상과 예술혼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특히 정조의 일대기인 ‘천릉지문’(遷陵誌文)을 번역 소개한 점도 돋보인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