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압록강

  • 입력 2001년 5월 4일 19시 09분


◇영웅을 꿈꾸는 사람들…병자호란 무대로 한 인간드라마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지만 대개의 인간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만다. 희망과 절망의 낙차가 크면 클수록 역사적 인간의 삶이란 더욱 드라마틱한 법이다.

작가가 30대 초반의 패기로 시작해 10년 만에 완성한 ‘압록강’에는 역사소설이 주는 인간 드라마의 재미가 담겨 있다. 여기서 작가가 주목한 것은 17세기 명나라와 청나라가 교체되는 혼란기에 새로운 희망을 위해 싸운 인간들의 실존적 투쟁이다.

조선의 혼란기에 영웅을 꿈꾸는 주인공은 5명. 젊은 장수 임경업, 도원수 강홍립, 외교술에 탁월했던 광해군, 인조반정을 주도했던 최명길이 실존인물이라면, 활빈당 두령인 교몽은 작가가 창조한 인물이다. 작가는 격동기를 헤쳐간 이들이 겪었을 법한 숱한 불면의 시간을 복원함으로써 한 시대의 본질에 다가가려 한다.

여진족에 항복해 ‘강 오랑캐’로 전락한 강홍립과 용상에서 쫓겨난 광해군은 자기 정당화의 몸부림을 보여준다면, 야인에서 반정 1등 공신으로 화려하게 재기하는 최명길과 차례차례 위기를 넘기며 승승장구하는 임경업은 불굴의 의지를 표상한다. 이밖에도 체제의 중심에서 반체제에 이르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다사다난(多事多難)한 인간사의 스펙트럼이 드러난다. 작가는 “등장 인물들의 모순된 말과 행동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전략이나 결과였다”고 말한다. 역사란 다양한 모순의 부대낌 속에서 조금씩 전진한다는 게 작가의 역사관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이 작품은 역사소설의 묵직함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형식 실험을 통해서 무미건조함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빛난다. 특히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구전설화 등 우리 구비문학이 보여주는 판타지적 상상력이 소설의 윤기를 더해주고 있다.

김탁환 대하소설, 각 권 270쪽 내외 8000원 열음사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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